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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457

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NEW E.313 Time to build a consensus

2020.05.26 4 0
KOREA JOONGANG DAILY

5월 18일

My ethics teacher looked serious one day in May 1996, when the season was changing from late spring to early summer. He began the class by saying, “I was a high school student just like you … When gunshots became clear at night, I hid in a small room, with windows covered with blankets.” He ended the class by saying, “My mother discouraged me from going outside even in broad daylight.” As my memories are fading, I only remember the story in general. But the teacher speaking with his hands tightly holding onto the desk remains clear in my memory like a photograph.

입술이 두꺼운 윤리 선생님은 표정이 무거웠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1996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여러분과 같은 고등학생 무렵이었다”로 시작한 수업은 “총소리가 또렷해지는 밤에는 이불로 창문을 가리고 작은 방에 숨어 지냈다”를 거쳐 “해가 중천인데도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말렸다”로 끝났다. 기억이 희미해진 탓에 그의 말은 줄거리만 남았지만교탁을 움켜쥐고 얘기하던 모습은 한장의 사진처럼 또렷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박혔다.



I cannot presume why he talked about his dark memories from 16 years earlier. Perhaps he wanted to hold on to his fading memories. As an economic boom allowed people to live comfortably, people’s memories were getting blurry at the time. The May 18 Special Act was passed in December 1995, but there was no room for holding onto painful memories.

24년 전 그가 왜 16년 전의 어두운 기억을 꺼냈는지에 대해선 나로선 짐작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 또한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고 싶었을 게다. 먹고 살기 딱 적당한 호황이 찾아온 그 무렵은 모든 게 흐릿하던 시절이었다. 95년 12월 5・18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타인의 아픈 기억을 붙잡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I am reminded of the teacher in May because he confessed that someone close to him was killed by the martial law army. It was very shocking for me. The textbook reflecting the fifth and sixth curriculum only explained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in a few sentences. There were no statistics of victims or dates for the events. All I learned about May 18 was a dry sentence, which read “a clash between citizens and suppressing forces. In the process, shockingly, a number of innocent citizens were killed.”

5월이 찾아오면 그가 생각나는 건 가까운 누군가가 계엄군의 총에 사망했다는 고백 때문이다. 내겐 큰 충격이었다. 5・6차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과서는 5・18을 단 몇 줄로 설명했을 뿐이었다. 희생자 통계도 사건이 발생한 날짜도 없었다. ‘시민들과 진압군 사이의 충돌’이란 감정을 찾기 힘든 건조한 단어로 나열한 문장이 내가 배운 5・18의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24년 전 5월의 그날, 교탁 뒤에 선 그는 상당한 용기를 내야 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실은 꺼내 드는것만으로도 큰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In my memory, my teacher 24 years ago was not angry about what happened in Gwangju in May 1980. He did not show any tears. He only shared the raw memories with his students. But he must have plucked up the courage to discuss the subject on that day in May 24 years ago. Some facts take determination to bring them up. It must have been his way of cherishing the memories of the victims. Has he gotten over the trauma?

24년 전 그는 80년 5월 광주에 대해 크게 분노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어떤 종류의 눈물도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둔 날 것 그대로를 꺼내 우리에게 들려줬을 뿐이다. 아마도 그게 5・18을 추모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게다. 궁금하다. 그는 5월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을까. 올해도 누군가에게 40년 전 광주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까.

May is here again. A few more bills have been enacted and several presidents have now attended the memorial ceremony. But not much has changed. Truth and lies clashed again this year too. The lies that are covered with superficial arguments attract people’s attention. On the other side is the truth with resignation and sorrow. It is the time to search for a national consensus.

다시 5월이 찾아왔다. 그동안 몇 개의 법이 신설됐고 몇 명의 대통령이 추모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진실과 거짓은 올해도 충돌했다. 그럴싸한 모습으로 치장한 거짓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맞은 편엔 체념과 슬픔이 쌓인 진실이 서 있다. 난 24년째 과거를 지배하려는 거짓의 탐욕을 지켜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교과서에 적힌 건조한문장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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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NEW E.312 Seeing through things

2020.05.25 15 0
KOREA JOONGANG DAILY

세상을 투명하게 보려면

The history of glass goes back to 6000 B.C.. Roman scholar Pliny the Elder wrote in the encyclopedic “Natural History” that glass was made by ancient Phoenicians. Ancient glass was colored, and the opaque beads were used for accessories.

유리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는 백과사전 『자연사』에서 “유리는 고대 페니키아인이 만들었다”고 적었다. 고대 유리는 색이 들어있고 불투명한 구슬 형태여서 주로 장신구로 사용됐다.



During the medieval period, technology to melt glass to make plates was developed, but glass was still opaque, and making completely colorless glass was difficult. Glass was fitted on frames to block wind, snow and rain and bring sunlight inside, but it was too expensive and fragile. Cathedrals and palaces used “stained glass” because colorless glass could not be made.

중세 이후 유리를 녹여 판 모양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불투명했고 완전한 무색으로 만들긴 어려웠다. 창틀에 끼워 바람과 눈·비를 막고 채광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너무 비싼 데다 잘 깨졌다. 대성당이나 궁전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사용된 건 무색투명한 유리를 만들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In the Renaissance period, technology to make colorless glass was developed by adding sodium carbonate to silica to remove impurities and lower the melting point. Galileo Galilei’s astronomical observation was made possible thanks to the development of glass technology.

르네상스 시대에 규사(硅砂)에 탄산나트륨을 더해 불순물을 없애고 용융점을 낮춰 다양한 모양으로 무색투명한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갈릴레이가 천체를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유리 기술의 발달 덕분인 셈이다.



Glass became transparent, but there were still optical limits. When multiple lenses were used to make a telescope or microscope, distortions occurred. It took another 200 years to resolve these issues.

유리는 투명성을 얻었지만 아직도 광학적 한계가 많았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만들기 위해 렌즈 여러 개를 겹치면 색수차·광학수차·구면수차 같은 왜곡현상이 발생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진 또 200여년이 걸렸다.



In 1812, German scientist and mathematician Carl Friedrich Gauss developed the Gauss-type lens by combining a convex lens and a concave lens to resolve distortion. In 1888, American telescope maker Alvan Clark invented the “double Gauss lens” by combining two sets of Gauss lenses to drastically reduce distortion, and the model became the origin of the standard lens used today.

독일의 과학자이자 수학자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1812년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겹쳐 상의 왜곡 문제를 해결한 ‘가우스 타입’ 렌즈를 개발했다. 1888년 미국인 앨번 클라크가 가우스 렌즈를 앞뒤로 배열한 ‘더블 가우스’ 렌즈를 발명해 왜곡을 획기적으로 줄였는데 현대에 사용되는 표준 렌즈의 조상 격이다.



In the past, dozens of mathematicians had to solve complicated equations to calculate curvature and skilled technicians had to precisely make lenses. But today, they can be easily designed by computers. It took nearly 7,000 years for mankind to make colorless, transparent lenses that can reflect the world as it is.

수십 명의 수학자가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 곡률을 계산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정밀 가공해야 했던 렌즈는 이제 컴퓨터로 쉽게 설계하고 만든다. 인류가 무색 투명한 유리를 만들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는 렌즈를 갖게 되기까지 7000여년이 걸린 셈이다.

Science has advanced, but people’s perspectives seem to be distorted still. On the same topic, people look at the world through their own lenses, depending on their tendencies and interests. Korean society in 2020 is not different. The word “transparent” originates from Latin word “trans,” meaning “through,” and “parere,” meaning appear. I might need a superpower to see the world transparently.

과학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시각은 아직도 왜곡투성이 같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영에 따라, 이해에 따라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 2020년 대한민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영어 단어 ‘투명성(transparency)’은 ‘꿰뚫는다’는 뜻의 접두어 trans와 ‘나타나다’는 뜻의 라틴어 parere가 더해진 것이다. 세상을 투명하게 보려면 투시 능력이라도 있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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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11 Lacking a Yoshimura

2020.05.22 34 0
KOREA JOONGANG DAILY

한국 보수가 찾아야할 '요시무라'

Hirofumi Yoshimura is the hottest politician in Japan. What made the 44-year-old Osaka governor a star was Covid-19. Japanese newspaper Mainichi Shimbun asked readers which politician responded to Covid-19 the best, and 188 out of 401 respondents chose Yoshimura. 59 chose Tokyo Governor Yuriko Koike, and only 34 chose Prime Minister Shinzo Abe.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요즘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인이다. 44세의 오사카부 지사를 스타로 만든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마이니치 신문이 '어느 정치인이 코로나에 잘 대응했나'고 물었더니 401명 중 188명이 그를 찍었다. 2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는 59명, 3위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는 겨우 34명이었다.



The governor has established his own, distinct brand after going a separate way from Abe. Abe failed to provide grounds for why schools around Japan were closing, why the state of emergency was declared and extended and why the Olympics was postponed by a year. He only said that the decisions were made upon “comprehensive review” and based on “political determinations.”

그에겐 확실한 '요시무라 브랜드'가 있었다. 아베 총리와 다른 길을 갔다. 아베는 왜 전국 휴교령을 내리는지,긴급사태선언을 왜 발령하고 왜 연장하는지, 왜 마스크를 2장만 배부하는지, 왜 올림픽을 1년만 연기하는지 근거를 전혀 못 댔다. 그때 그때 "종합적으로 검토했다","정치적 결단이다"라고만 했다.

But Yoshimura was different. He said that it was irresponsible to force people to drive into a tunnel without an exit and instead proposed the “Osaka model.” His closures and the order to refrain from going out will be lifted in phases, when specific conditions are met for seven consecutive days. And he kept the promise.

하지만 요시무라는 달랐다. "출구 없는 터널을 계속 달리라고 강요하는 건 무책임하다"며 '오사카 모델'로 불리는 출구를 제시했다. '중증자용 병상 사용률 60% 미만', '바이러스 검사 양성률 7% 미만', '감염경로를 모르는 확진자 수 하루 10명 미만'의 조건이 7일 연속 충족되면 휴업과 외출자제 요청을 단계적으로 해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At the young age of 44, reckless speech and good looks are Yoshimura’s weapons. The former attorney built a colorful resume in a short period of time, including experiences as an Osaka city council member, a member of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and Osaka’s mayor. As Yoshimura has become popular, his Japan Innovation Party is also getting the spotlight. It traditionally enjoys the image of “radical right party” based in Kansai region, but with the Yoshimura effect, it now has the highest rating among opposition parties in some polls. The Japan Innovation Party was founded by former Osaka Mayor Toru Hashimoto, who said, “‘Comfort women’ existed everywhere in the world,” in reference to Korean women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the Japanese during World War II. The far-right party has said that Koreans resent working hard.

44세의 젊음과 거침없는 언변, 준수한 외모는 그의 무기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오사카시의원-중의원 의원-오사카 시장 등 짧은 기간에 다양한 경력도 쌓았다. 요시무라가 뜨면서 소속정당인 일본유신회까지 떴다. 간사이 지역이 기반인 '꼴통보수 정당' 이미지가 짙었지만 '요시무라 효과'로 일부 조사에선 전국 지지율이 야당 1위로 뛰어올랐다. 일본유신회는 "위안부는세계 어디에나 있었다"고 망언했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이 만든 당이다. 한국 입장에선 이 형편없는 우익 정당도 생존을 위해 새 인물 발굴에 사력을 다한다.



The candidate nomination process for the most far-right party in Korea for the general elections in April was pathetic. It should have nominated 10 Korean Yoshimuras to fight the ruling party as it rode the “Corona Tiger,” but the reality was different. I could find no new faces. The nomination process was a mud fight among political heavyweights.

지난 4월 총선에서 한국 보수 진영의 공천은 눈뜨고 못 볼 수준이었다. '코로나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여당과 맞서려면 '한국판 요시무라'를 열 명쯤은 공천해야 했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그럴듯한 새 인물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공천작업은 황교안·김형오·홍준표의 갈등 속에 흙탕물로 변했다.



Former campaign manager Kim Chong-in’s ideas for leadership failed to sound convincing. But restoration of the conservatives is far-fetched. If the opposition party fails to nurture someone who can exceed people’s expectations, there is no future for conservatives. They may have to listen to the boastful praises of the liberals mentioning “Taejong” and “Sejong” for several more decades.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의 느닷없는 '40대 경제전문가 기수론'이 잘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욕심을 부리는 분들 수준으로 보수의 재건은 어림도 없다. 국민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인물을 키우지 못하면 보수의 미래도 없다. 그러면 '태종''세종'운운하는진보 진영의 기고만장한 용비어천가를 몇십년간 더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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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10 Repaying the debt to the Navajo

2020.05.21 16 1
KOREA JOONGANG DAILY

나바호

Drive to the east of Las Vegas in the United States and you encounter vast red lands. Colossal sandstones across the horizon are breathtaking. It is Monument Valley, familiar as the setting of old Western movies such as “Stagecoach” (1939), “The Searchers” (1956) and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동쪽으로 한참을 달려가다 보면 광활한 홍토지(紅土地)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평선을 꿰뚫을 듯이 날카롭게 솟아있는 초대형 비석 모양의 붉은 사암 기둥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역마차’(1939) ‘수색자’(1956)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등 서부 영화의 단골 배경으로 익숙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다.



Ironically, this beloved American land is the home of the Native American tribes — especially the Navajo Nation — killed by white Americans. The Navajo Nation is the largest American Indian territory covering 71,000 square kilometers (27,413 square miles). The population of the Navajo Nation varies by data, from 90,000 to 200,000, but it is one of the largest Native American tribes in the United States. Navajo rugs are widely regarded as the most celebrated artwork of North American tribes.

미국인의 ‘마음의 고향’인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존 웨인과 같은 백인의 총에 무수히 쓰러졌던 북미 원주민, 그중에서도 나바호족(族)의 터전이다. 7만1000㎢에 이르는 미국 최대 원주민 보호구역 ‘나바호 자치국’(Navajo Nation)이 이 신령스러운 공간을 품고 있다. 나바호족 인구는 자료에 따라 9만~20만명까지 들쭉날쭉하지만, 미국 내 원주민 부족 중에서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이들이 만들어 나바호 러그(Rug)로 불리는 직물 깔개는 북미 원주민의 예술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The Navajo once garnered international attention as they served as code talkers during World War II. To avoid communication hacking by Japanese forces, the U.S. forces created codes using the Navajo language, and the Navajo soldiers served as code talkers.

이 부족은 한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차 대전 때의 ‘코드토커’(code talkers) 활동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의 ‘무선통신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미군은 나바호족 고유 언어로 암호를 만들었고, 나바호 용사들이 이를 활용해 암호통신병으로 활약했다.

Tanks were called “turtles” in the Navajo language, bombers were “pregnant birds” and machine guns were “sewing machines.” After the Navajo codes were used, Japanese forces could not decode U.S. military communications. In 2002, John Woo made a movie titled “Windtalkers” on the subject.

탱크는 나바호족 언어의 ‘거북이’에 해당하는 말로 불렀고, 폭격기는 ‘알을 밴 새’로, 기관총은 ‘재봉틀’로지칭했다. 나바호족이 등장한 이후 일본군은 미군 통신을 예전처럼 쉽게 해독할 수 없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이 내용을 소재로 영화 ‘윈드토커’(2002)를 만든 이후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The Navajo Nation has relations to Korea too. More than 800 Navajo soldiers, including the last original code talker Chester Nez (1921-2014), fought in the Korean War and shed their sacred blood for Koreans.

나바호족은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마지막 암호통신병’ 체스터 네즈(1921~2014)를 비롯해 800여명의 나바호족이 6·25 전쟁에 참전했고, 한국인을 위해 고귀한 피를 흘렸다.

The 7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Commemoration Committee, a joint civilian-government group, has decided to send 10,000 face masks and hand sanitizers to the Navajo veterans who joined in the Korean War. It is a small gift, but the timing is right. A recent report shows that the Navajo Nation is the area with the highest per capita Covid-19 infection rate in the United States. Those receiving the assistance would welcome it as rain at the right timing. I hope the sincere appreciation for their service can be conveyed.

민관 합동 조직인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가 나바호족 참전 용사들에게 마스크 1만장과 손 소독제 등 방역물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박한 보은이지만 시점이 좋다. 나바호 자치국이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인당 감염률 최상위권 지역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라서다. 지원받는 입장에서는 두보(杜甫)가 읊은 ‘때를 알고 내리는좋은 비’처럼 반가운 지원일 것이다. 우리 국민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이 넉넉하게 전달되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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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09 A reinvention of karaoke bars

2020.05.20 14 0
KOREA JOONGANG DAILY

노래방

In April 1991, a booth with a strange device was installed at the Royal Electronic Entertainment Center in the Dong-A University neighborhood of Hadan-dong, Busan. The device was a modified karaoke machine. If you inserted a coin and chose a song, the machine played the instrumental version of the song. The user could sing while reading the lyrics on the monitor. It was the first karaoke machine in Korea.

1991년 4월, 부산 하단동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에 낯선 장비를 갖춘 부스가 설치됐다. 장비는 가라오케 기계를 개조한 것이었다. 동전을 넣고, 노래를 고르면 연주가 나왔다. 모니터의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한국 최초의 노래방 기계다.



After a month, a business named Hawaii Beach Noraebang opened in Minrak-dong near Gwangalli Beach, Busan, with multiple booths. Hawaii Beach Noraebang was the beginning of noraebang, or karaoke bars, whose only purpose is singing. In 2005, the number of noraebang peaked at 37,000 in Korea. As of April, 32,000 karaoke bars are in business across the country.

한 달 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민락동에 이런 부스를 여러 개 갖춘 하와이비치노래연습장이라는 업소가 문을 열었다. 앞서 1979년 부산 남포동에는 가라오케 기계를 갖춘 술집들이 있었다. 하지만 노래 자체가 목적인 노래방은 이때 시작됐다. 2005년 3만7000여개로 정점을 찍은 전국 노래방 수는 지난달 기준 3만2000여개다.

Daisuke Inoue was a performer at a bar in Kobe, Japan. One day, a patron asked him to accompany him on a business trip and play music for him. As he could not join, Inoue recorded the accompaniment on a tape. Getting the idea from the experience, he created the first karaoke machine by modifying a car stereo and amplifier in 1971. The machine that used an eight-track cartridge tape was named “8 juke.” Such machines are now known as “karaoke,” meaning “empty orchestra” in Japanese.

이노우에 다이스케(井上大祐⋅80)는 일본 고베의 한 술집 악사였다. 손님이 그에게 회사 여행에 동행해 반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그는 반주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줬다. 그는 여기서 착안해 1971년, 카 스테레오와 앰프를 개조해세계 최초의 가라오케 기계를 만들었다. 8트랙 카트리지 테이프를 사용한 이 기계를 '에이트주크'(8JUKE)로 이름 붙였다. 이런 기계를 통칭해 '가라오케'(カラオケ)라 불렀다. '비었다'는 뜻의 일본어 '가라'(空·から)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앞 두 글자를 합성했다.



Over the long holiday in early May, clubs in Itaewon-dong, central Seoul, became the sources of a cluster of Covid-19 infections. A primary patient who visited a club there went to a noraebang in Gwanak District, southern Seoul. A person who was there at the time was infected. The secondary patient met a co-worker at a bar in Hongdae, western Seoul, and transferred the infection to him. The co-worker’s daughter has also contracted the virus. The first infected person did not wear a face mask and spread droplets in the noraebang, which became a key site for the spread of Covid-19. In 2004, Inoue received the Ig Nobel Prize for peace, a parody prize of the Nobel Prize. He was chosen for attaining peaceful coexistence by “providing an entirely new way for people to learn to tolerate each other.”

이달 초 황금연휴 기간, 서울 이태원 클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발원지였다. 4차 감염 사례까지 나왔다. 클럽을 방문했던 1차 감염자가 서울 관악구의 노래방을 찾았다. 비슷한 시각 같은 곳에 있던 사람이 2차 감염됐다. 2차감염자를 서울 홍대 주점에서 만난 직장 동료가 3차 감염됐다. 이어 3차 감염자 딸이 4차 감염됐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감염자가 비말을 날렸던 좁고 폐쇄된 노래방은 코로나19 재확산의 중요 경유지가 됐다. 이노우에는 2004년 '패러디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Ig)노벨상 평화상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인간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평화 공존을 이룩한 공로'였다.



Regardless of the skill level, it takes tolerance to listen to other people singing. If you display the patience a bit more, you can get over the inconvenience of social distancing. Let’s save clubbing and noraebang singing for now for the days when we can all sing and dance more cheerfully.

(잘하든 못하든) 남의 노래를 듣는 건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긴 하다. 그런 인내심을 좀 더 발휘한다면 지금의 '거리 두기'에 따른 불편함도 이겨낼 수 있다. 클럽을, 노래방을, 잠시 아껴두자. 모두 함께, 더 신나고 즐겁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날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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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08 Goodbye globalization

2020.05.19 35 0
KOREA JOONGANG DAILY

굿바이 세계화

Earlier this year, France declared a war against bed bugs as the pest appeared not only in hotels and lodgings but also in hospitals, apartments and theaters. Major cities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east Asia are also struggling with bed bugs. In 2016, a hotel in Busan had a case of bed bugs.

올해 초 프랑스가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베드 버그(Bed Bug)’로 불리는 빈대가 호텔 등 숙박업소에 이어 병원과 아파트, 극장 등에서 잇따라 출몰해서다. 미국 뉴욕 등 주요 도시와 동남아 일대의 호텔도 베드 버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6년 부산의 한 호텔에서도 베드 버그가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The spread of bed bugs is an aspect of globalization. As technological advancement allows borders to open up to the movements of people, goods, capital and information, bed bugs on travelers’ luggage and other channels can cross borders easily. Globalization widened the boundary of bed bugs.

베드 버그의 기승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한 단면이다. 기술의 발전 속 사람과 재화에 이어 자본과 정보에도 국경이 열린 통합의 시대를 거치며, 여행객의 가방 등에 몸을 실은 빈대도 손쉽게 국경을 가로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화가 베드 버그의 활동 반경을 넓힌 셈이다.

Globalization reduced the distances for everything. In the closer distance, the global community has become closely entangled in fate. Crisis and disease spread easily, and the entirity of mankind is exposed to the risk. The waves of the global financial crisis that started in 2008 are spreading across the world. Covid-19, which first started in China, has led the entire world to suffer.

세계화는 모든 것의 거리를 좁혔다. 좁혀진 거리만큼 긴밀하게 얽힌 지구촌은 운명 공동체가 됐다. 위기도 감염병도 손쉽게 전파되고, 전 인류가 위험에 함께 노출됐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는 전 세계로 번졌다. 중국에서 첫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는 신음하고 있다.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각국의 경제와 사회 활동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Covid-19 is a fatal blow to already shaking globalization. In order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pandemic, countries are keeping a distance from one another, restricting entry, closing borders and controlling exports, and it is about to kill globalization. This year, the international trade volume is expected to drop by 10 to 30 percent compared to last year. British magazine The Economist published a cover story titled “Goodbye globalization” for the May 16 issue. Fatigue over globalization is nothing new. From “slowbalization” of regressing globalization to “deglobalization” of prioritizing own interests, “distancing from globalization” seems to be the new trend.

코로나19는 흔들리는 세계화에 가해진 결정적 한 방이다.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입국 제한과 국경 봉쇄, 수출 규제 등의 ‘국가 간 거리 두기’는 세계화의 숨통을 끊을 태세다. 올해 세계 상품 무역량은 1년 전보다 10~30% 줄어들 전망이다. 세계인의 90%는 닫힌 국경 안에서 지내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16일 자 커버스토리로 ‘굿바이 세계화’를 다룬 이유다.
세계화에 대한 피로감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화의 쇠퇴를 일컫는 ‘느린 세계화(Slowbalization)’에 이어 최근에는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탈 세계화(Deglobalization)’까지 ‘세계화와 거리 두기’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모양새다.

The Economist wrote that the greatest period of globalization has ended, and it has become harder to resolve global challenges like economic recovery. It feels real already. After the first trade deficit in April in 99 months, Korea’s exports from May 1 to May 10 decreased by 46.3 percent from the previous year. Can we handle an unprepared breakup with globalization?

이코노미스트는 “세계화의 가장 위대한 시기가 끝나며 경제 회복 등 전 지구적 난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이 말이 벌써 확 와 닿는다. 99개월 만에 무역 적자를 기록한 지난달에 이어 지난 1~10일 수출은 1년 전보다 46.3% 줄었다. 세계화와의 준비 없는 이별을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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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07 If two giants dance

2020.05.18 14 0
KOREA JOONGANG DAILY

두 거인이 손 잡으면

In 1968, Volkswagen presented the first automobile with electronic fuel injection (EFI). An internal combustion engine gains power by mixing air and fuel and injecting into cylinders, and the conventional method was to intake a set amount of air and inject fuel mechanically.

1968년 폴크스바겐은 전자제어식 연료 분사장치(EFI)가 장착된 첫 자동차를 내놨다. 내연기관은 공기와 연료를 섞어 실린더 내에 분사해 폭발시킴으로써 동력을 얻는데, 이전까지는 기계식으로 정해진 양의 공기를 흡입하고 연료를 분사하는 방식이었다.

The emergence of EFI made precise fuel injection according to the driving environment, temperature, and engine pressure possible. The system was a kind of a computer calculating variables of 25 transistor semiconductors and controlling the fuel injection amount. It was the first application of ECU, electronic control unit, in automobiles.

EFI의 등장으로 차량의 주행 환경, 온도, 엔진 내 압력 등에 따라 정밀한 연료 분사가 가능해졌다. 이 시스템은 25개의 트랜지스터 반도체의 변수를 계산하고, 연료 분사량을 조절하는 일종의 컴퓨터였다. 전자제어장치(ECU· Electronic Control Unit)가 처음으로 자동차에 적용된 것이다.

It is no exaggeration to call today’s automobile a big computer. The ECU that had simply controlled fuel injection requires super computer-level calculation as cars evolved into self-driving vehicles and electronic cars. More than 100 types of ECUs are installed in a single car, handling communication inside the car and between the car and objects and information-entertainment systems controlling navigation, and audio as well as a range of other convenience devices.

지금의 자동차는 거대한 컴퓨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연료 분사만 제어했던 최초의 ECU는 자율주행·전기차 등으로 진화하면서 ‘슈퍼 컴퓨터’ 수준의 연산이 필요해졌다. 차량 내부, 차량과 사물 간 통신에서부터 내비게이션·오디오·편의장비를 통합 제어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1대에 들어가는 ECU가 100여 종에 이를 정도다.

In the age of self-driving and electric vehicles, a system to control ECUs is required. The so-called SoC, or System on Chip, integrates sensors, processors, memory semiconductors and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s. Qualcomm’s Snapdragon Ride is an example.

자율주행·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이들 ECU를 통합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이른바 ‘시스템 온 칩(SoC·System on Chip)’인데 센서와 프로세서, 메모리 반도체와 주문형 반도체를 통합한 형태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라이드’가 대표적이다.

Tesla commissions SoC integrating auto-drive ECUs from Samsung Electronics. The system called HW 3.0 is so advanced that Volkswagen and Toyota are impressed. While Samsung had been criticized for being reckless, it focused on the development for electronics for automobiles.

테슬라는 자율주행용 ECU를 통합한 SoC칩을 독자 설계해 삼성전자에서 위탁 생산한다. HW 3.0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ECU의 원조인 폴크스바겐, 도요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앞서 있다. 무모하단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동차용 전장(電裝) 개발에 매달린 덕분이다.



Expectations are high. Samsung Electronics is highly interested in electronic devices for automobiles as a future business. Hyundai Motors is partnering with countless companies to develop integrated SoCs for future models. There is so much to gain by two leading Korean companies to join together is pursuing these developments. Stable supply can be secured, and technology can be developed using “test beds.” It is certainly one way to achieve “win-win” as both need to find a new growth engine.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회동을 두고 기대감이 높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먹거리로 자동차용 전장에 관심이 많다. 현대차는 미래 자동차용 통합 SoC 개발을 위해 수많은 기업과 협력 중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손을 잡으면 얻을 건 많다.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고 ‘테스트 베드’ 삼아 기술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마냥 ‘어벤저스’가 될 것도 아니지만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두 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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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06 ‘Old evil and pro-Japan’

2020.05.15 33 0
KOREA JOONGANG DAILY

조국, 한미향과 친일파

Yoon Mee-hyang — a lawmaker-elect of the Citizen Party and former chairwoman of the Korean Council for the Issues of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 is facing scrutiny even before entering the National Assembly. Yoon has played a major role in advocating for the issues of wartime sex slavery by Japan to the world. Having worked hard in the field for more than 30 years, her way to the legislature seemed smooth. But Lee Yong-soo, a former wartime sex slave with whom she worked with for decades, became an unexpected obstacle.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국회 입성도 하기 전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윤미향은 전쟁 성노예제의 문제점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30여년을 현장에서 고생한 그가 여의도로 가는 길은 순탄해 보였다. 그러나 그와 수십년을 동고동락한 이용수 할머니가 예상치 못한 암초가 됐다. '보수 언론'이 아닌 이 할머니의 저격은 울림이 있었다.

On May 12, Yoon said she was reminded of former Justice Minister Cho Kuk — an icon of liberalism in Korea whose personal life had been thoroughly exposed for six months over a corruption scandal involving his family — after allegations were raised against her, her family and the Korean Council. She said it was a plot by the rightist media and the United Future Party and that she would fight against the opposition United Future Party, pro-Japan media and scholars. Former lawmaker Chun Yu-ok taunted that she was the female Cho Kuk. I don’t mean to agree, but I recalled the chaotic situation last year. Cho defined people attacking him as “old evil and pro-Japan” and brought his supporters together, dividing the nation in two.

윤 당선인은 12일 자신과 가족,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의혹 제기에 “6개월간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보수 언론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이라며 “통합당과 친일 언론, 친일 학자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전여옥 전 의원은 “여자 조국에 등극했다”고 비꼬았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윤 당선인이 조 전 장관을 언급할 때 스멀스멀 지난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떠올랐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적폐ㆍ친일’의 프레임을 씌우고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나라를 두 동강내 대결로 가던 그 모습 말이다.

A civil group accused Yoon and Lee Na-young, current chair of the board of the Korean Council, of embezzlement and fraud charges.

한 시민단체는 13일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이나영 이사장을 횡령, 사기 등 혐의로 고발했다. 실제로 어떤 문젝 있었는지는 검찰에서 밝혀질 일이고, 윤 당선인은 성실히 조사에 응하면 된다.

But Yoon defined the issue as a matter of pro-Japan versus anti-Japan. Former Justice Minister Cho criticized Prof. Lee Young-hoon, author of the book “Anti-Japan Tribalism,” of being “unpatriotic and pro-Japan.” Cho used such expressions to describe people with different opinions.

그런데 그는 이 문제를 친일과 반일로 몰고갔다. 조국 전 장관은 지난해 『반일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를 “매국, 친일”이라고 비판했다. 평소에도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이런 표현을 하던 조 전 장관이다.

What’s important is that Cho and Yoon are public officials not free from verification. Cho’s wording when he was a scholar did not matter. Yoon as a civil activist doesn’t matter either. But Cho became a top government official, and Yoon was elected a proportional representative in the National Assembly. Therefore, verification has to be harsher. The process should have happened before the ministerial appointment or candidate nomination. The Blue House and the ruling Democratic Party were lazy to do the job, so the media and civil groups stepped in.

중요한 건 조 전 장관도, 윤 당선인도 검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공직자란 거다. 조 전 장관이 진보 학자로 활약할 때의 언행은 큰 문제가 안 됐다. 시민단체 활동가 윤미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은 지명직 공무원의 최고 자리에 올랐고, 윤 당선인은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다. 그런 만큼 검증은 더 혹독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장관 임명 전, 비례대표 선정 전에 이뤄졌어야 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그 책무를 게을리했기에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선 거다.

But Cho and Yoon brand their critics “old evil and pro-Japan.” They are not willing to see the criticisms against them. While they are already established as the ruling power of the society, they act like victims persecuted by the pro-Japanese establishment.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이나 윤 당선인은 비판 세력에 대해 일단 ‘적폐, 친일파’라고 선을 긋는다. 지적의 내용을 살펴보려고도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의 집권세력으로 자리잡았음에도 여전히 친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핍박받는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How are progressive people going to criticize Lee, who raised serious questions about Yoon and the Korean Council? They must not forget that the imprudent words and acts of top government officials can split the nation.

묻고 싶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에 각을 세웠던 진보 인사들,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문제를 꼬집은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선 뭐라고 비판할텐가. 신중하지 못한 고위 공직자의 언행은 국론 분열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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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05 Revealing true faces

2020.05.14 33 0
KOREA JOONGANG DAILY

위기 겪을 때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Anyone can be a good person on a good day. A person’s true nature is revealed when they are forced into a corner. The same goes for a company. The sincerity and true capacity of a company surfaces when it goes through a crisis. With the Covid-19 outbreak, we see the true nature of many people and companies.

여유가 있을 때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다. 진짜 모습은 궁지에 몰렸을 때 드러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위기를 겪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가 그 기업이 갖춘 진정성이자 실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우리는 많은 이들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다.



Airbnb, a global lodging sharing platform, announced a large-scale downsizing last week. One-thousand nine-hundred of its 7,000 employees around the world are to be laid off. More than 30 million jobs have disappeared over the past two months in the United States. Considering the impact on the travel industry, Airbnb’s layoffs are not that surprising. What’s surprising is the reactions in and out of the company over the decision.

글로벌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지난 주에 대규모 감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세계 직원 7000명 중 1900명이 대상이다. 지난 2개월 동안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3000만개. 여행 산업이 받은 충격을 감안하면 에어비앤비의 감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감원 결정을 둘러싼 회사 안팎의 반응이다.

Co-founder and CEO Brian Chesky’s letter announcing the layoff stirred social media last week. A start-up insider shared the mail with his company, as it was a graceful way to go separate ways. In the mail, Chesky explained the background for the decision in detail and said the business would focus on surviving from now on. He also promised decent severance packages — and health insurance coverage until the end of this year. To support job searching, five measures are being offered, including a laptop. The letter ends, “Please know this is not your fault.”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감원을 알리기 위해 쓴 편지는 지난주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헤어질 때도 품격이 있다”며 이 메일을 회사와 공유했다. 메일에서 체스키 대표는 인력 감축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생존을 위해 앞으로 집중해야 할 사업도 소개했다. 그리고 떠나는 이들에게 퇴직금은 물론 연말까지 의료보험료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노트북 지급을 포함해 다섯 가지 재취업 지원책을 마련했다고도 알렸다. 메일은 이렇게 끝난다. ”결코 여러분이 잘못해서 퇴사 결정이 내려진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You may think he was trying to package the brutal layoff beautifully. But an Airbnb Korea employee said that employees are more moved than people outside of the company may feel. Some departments had to cut their workforce by as much as 80 percent.

결국 차갑고 냉정한 해고를 아름답게 포장만 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코리아의 한 직원은 “바깥에서 느끼는 것보다 직원들이 느끼는 감동은 오히려 더 크다”고 전했다. 부서에 따라 최대 80%까지 감원이 단행된 상황.

The employee said, “I was surprised that no one hates the company and that they mostly said they understood and support the decision. […] We were frequently told how the company was struggling. We saw Chesky saying with an exhausted face that it was the hardest day of his life. The founders are working without pay for a year, and executives downsized their offices. With the money saved, the company worked to make up for losses of the hosts.”

그는 “그런데도 회사를 증오하는 이들이 없이, ‘이해한다. 응원한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놀랐다”고 말했다. “회사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자주 공유받았어요. 체스키 대표가 초췌한 얼굴로 ‘생애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걸 지켜봤죠. 창업자들이 1년 동안 월급을 받지 않기로 하고, 임원들이 사무실을 줄였어요. 그 돈으로 숙박 호스트들의 손해를 메우려고 노력했구요.”

This is the atmosphere that the current employee explained. Former and current employees got together over messenger to encourage those leaving and share job information. The company made efforts to be courteous until the last moment.

그가 전한 회사의 분위기는 이렇다. 메신저를 통해 전ㆍ현직 직원들이 모였다. 떠나는 이들을 격려하며 서로 일자리 정보를 나눴다. 회사는 이별을 전하는 문서에 사용하라며 디자인 양식을 전달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격식을 갖추려고 노력한 것이다. “우는 사람은 있어도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집중하고 있어요.”



A society works the same as a company. At times of crisis, our true faces are revealed. Another wave of crisis is spreading in Korea and elsewhere. How are you responding to the crisis? Now is the time to show mature composure once again.

기업 뿐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다시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에 대처하고 있는가. 지금껏 보여준 성숙한 모습을 또 한번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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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304 A state of war revisited

2020.05.13 25 0
KOREA JOONGANG DAILY

'코로나19'라는 전시상황

“I wouldn’t want anything until victory!” That was a slogan posted around Japan in 1942, the second year of the Pacific War. The nationwide contest for a slogan was supposed to be written by an 11-year-old girl. (It was later confirmed that it was written by her father.) The slogan reflects the desperate pledge from a girl not to desire anything until the war is won. It was useful propaganda to create a social atmosphere to cooperate with the war led by the state.

“갖고 싶어 하지 않을게요. 이길 때까지는." 1942년 태평양 전쟁 2년차에 일본 곳곳에 나붙었던 표어다. 전국민 표어모집에 11세 소녀가 쓴 (나중에 아버지 쓴 것으로 확인됨) 것이 당선됐다. 전쟁에서 이길 때까지는 갖고 싶다고 조르지도, 불평을 말하지도 않겠다는 비장함이 소녀의 시점이어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강요하지 않았지만, 신민으로서 국가의 전쟁에 협력하겠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유용했다.

After the Covid-19 outbreak, I am often told to refrain from unnecessary outings. It is not coercive, but the atmosphere to refrain from unnecessary outings reminds me of the wartime situation 78 years ago. Without using a forced measure like lockdown, the appeal is as effective as a law.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된 뒤 ‘불요불급(不要不急)의 외출은 자제 해달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결코 강제가 아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불필요한 외출은 자제하고 욕구는 참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흡사 78년전 전시 상황을 떠올린다. 락다운(Lockdown·도시봉쇄) 같은 강제력을 발동하지 않더라도, 법률 만큼의 효과를 내고 있다.

But the Shinzo Abe government doesn’t stop there. Declaration of a state of emergency has been defined in an epidemic-related law for the first time. The opposition party would have actively opposed in other times, but they couldn’t find a justification as Covid-19 spreads worldwide. With absolute majority votes, the Diet passed the bill in March.

하지만 정권의 눈은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긴급사태 선언이 감염증 관련 법령에 처음으로 명시됐다. 평시라면 야당이 적극 반대했겠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공포 앞에서 반대 명분을 찾지 못했다. 법안은 절대 다수 찬성으로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Japanese Prime Minister Abe did not miss the opportunity. On May 3, Constitution Day, he urged a constitutional revision, claiming that a clause on emergency response should be added as it is a grave and important task. He was criticized for going too far, but it is a lot easier for Abe to attain his long-cherished goal of constitutional amendment.

아베 총리도 이 기회 놓치지 않았다. 지난 3일 헌법의 날을 맞아 “긴급사태 대응을 헌법에 어떻게 자리매김 할 것인지 대단히 무겁고, 중요한 과제”라면서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불 난 집에서 도둑질 하는 거냐”라는 비판은 나왔지만, 개헌이 숙원 과제인 아베 총리에게 한결 수월해진 판국이다.

Politicians regretted a lack of strong administrative power as Japan could not enforce a lockdown like in European countries. They don’t mention the case of Korea, where the epidemic was successfully controlled without a lockdown. When Japanese media mentions Korea’s case, they focus on the government’s release of private information on the patients. The media stress that the spread could be blocked because the Seoul government checks patients’ credit card and mobile phone usage information.

정치인들은 “일본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락다운 조치를 할 수 없다”면서 강력한 행정권력을 아쉬워 했다. 락다운 없이 코로나19를 조기에 수습했던 한국의 사례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국 사례를 언급할 땐 확진자의 정보 공개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부가 개인의 신용카드, 휴대전화 정보를 확인해,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공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일반 시민들의 인터뷰도 곁들여진다.

Intellectuals are worried about Tokyo’s attempt to strengthen administrative authority through the pandemic. Commentator Hiroki Azuma said he was afraid of the possible regression of freedom and privacy in the face of Covid-19.

지식인들은 코로나19 사태를 틈 타 행정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우려한다.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감염증 공포 때문에 자유와 프라이버시 논의가 급속히 후퇴하는 ‘감각의 마비’가 두렵다”고 말했다.

In this time of the chaos, malicious intentions are directed at the vulnerable. Some people acted as “vigilantes” in front of the pachinko shops which refused the closure request. In the wartime of Covid-19, things that shouldn’t happen, happen. I get chills up my spine from time to time.

혼란의 시기엔 악의는 약자를 향한다. 휴업 요청을 거부한 파친코점 앞에서 행패를 부리며 ‘자경단’ 행세를 하는 시민, 확진자가 나왔던 학교 학생들이 ‘코로나, 코로나’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연. 있어선 안되는 일들이 코로나19라는 전시상황에서 벌어진다. 가끔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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