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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뉴스

E.189 Seeing what they want to see

2019.11.06 98 1
진행자
리암 카피 에디터 홀리 카피 에디터
KOREA JOONGANG DAILY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

On June 22, 1941, Nazi Germany invaded the Soviet Union. At the beginning of the battle, the German forces captured 300,000 Soviet soldiers as prisoners and occupied Minsk. The German forces could do that because Soviet commanders who survived the Great Purge were substandard, and forces had outdated weapons and a shortage of munitions. The responsibility for the defeat should be borne by dictator Joseph Stalin.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독일군은 개전 초기 소련군 포로 30만명을 잡았고, 주요 도시인 민스크를 점령했다. 소련군은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지휘관의 질이 낮았고, 무기가 낡고 군수품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그보다는 소련이 전략적 기습을 당한 탓이 더 컸다. 책임은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있었다.

History and culture professor Koo Ja-jeong of Daejeon University explained that Stalin thought Germany would not fight the Soviets unless it had concluded its fight with Britain. Actually, there were countless warning signals. Britain had decoded Germany’s cryptography and offered the information on the invasion to the Soviet Union. Soviet spy Richard Sorge who was working undercover in Japan even notified the invasion date. But Stalin believed in his own calculations and did not listen.

구자정 교수(대전대 역사문화학)는 “스탈린은 독일이 영국과 결판을 짓지 않은 한 소련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경고음이 수없이 울렸다. 영국은 독일 암호를 해독해 얻은 침공 정보를 전해줬다. 일본에서 암약하던 소련 간첩 리하르트 조르게는 침공 날짜를 알렸다. 하지만 자신의 계산만 믿은 스탈린은 듣지 않았다. 그의 공포 통치를 겪었던 군과 정보 당국은 침묵했다.

On the first day of the war, the Soviet troops were attacked by the German forces, but Stalin ordered them not to act without an approval. When the German forces advanced deep into the Soviet Union, he panicked. He came to his senses when his aides persuaded him to react.

전쟁 첫날에도 독일군의 공격을 받는 소련군에게 ‘승인 없는 행동 금지’ 지시를 내린 스탈린은 독일군이 소련 깊숙이 전진하자 공황에 빠졌다. 측근들이 다차(별장)에 숨은 그를 설득하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There is another disaster in war history caused by confirmation bias. General Douglas MacArthur ordered the United Nations forces to cross the 38th parallel and advance northward after the successful Incheon Landing during the Korean War. There were many reports on the participation of the Chinese Army, but he ignored them. He thought the Chinese Army was incompetent, and only a small number would be sent. In the end, the UN forces were caught by the ambushing Chinese forces and fled.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확증편향이 부른 전쟁사의 참사는 또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6ㆍ25전쟁 때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뒤 유엔군에게 38선을 넘어 북진하라고 명령했다. 중공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보고가 빗발쳤지만, 그는 외면했다. 중공군은 실력이 보잘것없고, 소수만 보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패주했다.

Blue House National Security Director Chung Eui-yong said at the National Assembly on Nov. 1 that he did not see the missile capabilities developed by North Korea as a very serious threat to our security. However, North Korea’s short-range missiles are aimed at Korea. Also, Chung said that it was technically hard to launch North Korea’s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ICBM) from a transporter erector and launcher (TEL). But the North fired an ICBM-level Hwasong-14 and Hwasong-15 missiles from a TEL in 2017. I am worried that I see some shadows of Stalin and MacArthur’s misjudgments in Chung’s remarks.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일 국회에서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미사일 능력은 우리 안보에 아주 위중한 위협이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은 한국을 노리고 있다. 또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기술적으로 TEL(이동식 발사대)로 발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은 2017년 ICBM급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TEL에서 쐈다. 정 실장의 발언에서 스탈린과 맥아더식 오판의 그림자가 보여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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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소개
리암 (카피 에디터)
뉴욕 브루클린 출신. 한국 생활 2년 차. 떡볶이와 김밥을 좋아함.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카피 에디터로 근무 중. 미국에서도 라디오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에서 ‘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 뉴스’ 진행하게 된 걸 신나하고 있음.

홀리 (카피 에디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음. 2016년 여름 한국에 왔으며, IT 회사와 교육 관련 회사를 거쳐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카피 에디터로 일하는 중. 여가 시간엔 여행을 하고, 반려견 '콩(Kong)'이와 노는 걸 제일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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