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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43 A sullen anniversary ceremony │쓸쓸한 환갑

2019.04.04 103 3
진행자
리암 카피 에디터 홀리 카피 에디터
KOREA JOONGANG DAILY

쓸쓸한 환갑

South Korea’s first President Syngman Rhee called Seoul National University’s physics Prof. Yoon Se-won in 1957. Yoon was among the first class of the state-funded scholarship program on nuclear energy. He had just returned from the International School of Nuclear Science and Engineering at the Argonne National Laboratory in the United States. President Rhee said, “You studied nuclear science? The government will support you, so find a place to set up a lab.”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대 물리학과 윤세원 교수를 불렀다. 윤 교수는 ‘제1기 국가 원자력 국비 유학생’이었다.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산하 국제원자력학교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이 대통령이 말했다. “원자력 공부했다지? 정부가 힘껏 밀어줄 테니 연구소 지을 곳도 찾아봐.” 1957년의 일이었다. 2년 뒤 원자력연구소가 탄생했다. 소속 인력에는 특급 대우를 해줬다. 기술표준원의 전신인 중앙공업연구소는 소장이 2급이었으나 원자력연구소는 1급만 3명, 2급은 5명이었다.


Two years later, the 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 (Kaeri) was established. Researchers got special treatment. The head of the Central Engineering Institute — the predecessor of the Korean Agency for Technology and Standards — was a grade two civil servant. Kaeri had three grade one members, the highest rank, and five grade two members. Sixty years have passed since then. The Kaeri will hold its 60th anniversary ceremony at the National Science Museum. Yet it doesn’t feel like a special birthday celebration. Compared to the 50th anniversary 10 years ago, the event has scaled down. Prime Minister Han Seung-soo attended the 50th anniversary, but this year the science minister’s attendance is yet unconfirmed.

그러고 60년이 흘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오는 9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 하지만 환갑잔치 분위기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10년 전 50돌에 비해 행사 규모부터 확 줄었다. 50돌 때는 한승수 국무총리가 참석했으나 올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참석조차 불투명하다.


At the same time, the number of award recipients decreased from 40 to 10. Decorations and awards, and both presidential and prime minister’s commendations will not be given. Instead, just 10 ministerial commendations will be awarded. Despite exporting a nuclear power plant to the United Arab Emirates (UAE), winning a bid for a research reactor in Jordan and winning a successful bid for a research reactor improvement project in the Netherlands, the number of prizes shrank sharply. The institute considered holding an international seminar, but decided to make it a domestic one for “various reasons.”

포상은 40명에서 10명으로 4분의 1 토막 났다. 50주년 때 받았던 훈장ㆍ포장과 대통령ㆍ국무총리 표창은 하나도 없고, 장관 표창만 10건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고, 요르단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수주했으며,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개선 사업을 따내는 등 괄목할 성과를 올렸는데도 포상은 쪼그라들었다. 연구원은 6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 등도 고려했다가 국내 토론회만 열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다.


The nuclear science community tried to comfort itself that the 50th anniversary ceremony was grand. But self-consolation feels more lonely to me. It is a pity that young researchers who should continue their jobs in the future are leaving the field one after anothe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last year, 20 percent of the freshmen in the nuclear engineering department dropped out. Once a major contributor to our energy independence and exports, the Kaeri is awaiting a humble birthday.

원자력계에서는 “50주년 때 성대하게 했으니까…”라며 애써 스스로를 달래기도 한다. 이런 자기 위안이 쓸쓸하게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 미래 연구를 이어갈 젊은 인력이 속속 원자력을 등진다는 소식은 안쓰러움을 더한다. KAIST에선 지난해 2학기 원자력 전공 지망자가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신입생은 벌써 20%가 자퇴했다. 에너지 자립ㆍ수출의 1등 공신인 원자력연구원은 그렇게 초라한 환갑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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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소개
리암 (카피 에디터)
뉴욕 브루클린 출신. 한국 생활 2년 차. 떡볶이와 김밥을 좋아함.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카피 에디터로 근무 중. 미국에서도 라디오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에서 ‘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 뉴스’ 진행하게 된 걸 신나하고 있음.

홀리 (카피 에디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음. 2016년 여름 한국에 왔으며, IT 회사와 교육 관련 회사를 거쳐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카피 에디터로 일하는 중. 여가 시간엔 여행을 하고, 반려견 '콩(Kong)'이와 노는 걸 제일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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