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이대로 추락할까

Ⅱ. 거품 꺼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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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거제는 한 때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곳’으로 불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실업률 1.6%. 전국 평균(3.6%)보다 훨씬 낮았다. 금융위기도 거제는 비껴간 듯 보였다. 넘치는 돈은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다. 조선소 주변에 40층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솟았다. 읍ㆍ면에도 우후죽순 건물이 들어섰다.

조선업 불황이 시작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지난해 거제의 실업률은 2.6%. 전국 평균(3.7%)보다는 낮지만, 거제가 자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8년 이래 최고치다. 부동산 거품도 꺼졌다. 월세는 반 토막 났고, 공급 과잉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했다. 은행 돈을 빌려 투자했던 사람들은 이자를 감당 못 해 하나 둘 나가떨어졌다. 빈집, 빈 가게가 계속 늘고 있다.

거제 사람들은 뒤늦게 ‘IMF·금융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Chapter 1 버블에 취하다

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있는 옥포동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일운면 지세포리. 인구 2000명인 이곳에 현재 770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공사 현장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절반 이상 분양이 안 됐다고 하더라. 최근 1년 새 곳곳에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뚝’ 떨어진 거제시 아파트 공급]

거제에는 2010년 이후 아파트 건설 붐이 불었다. 조선업 활황으로 수요가 크게 늘면서다.

이 무렵 거제 조선업체들은 해외에서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했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보통 조 단위다. 선박 사업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수주만 했지, 설계 능력이 부족했다. 자연히 유럽 등 선진국 엔지니어들이 대거 유입됐다. 거제시 등록 외국인 숫자는 2012년 9000명 수준에서 2015년 1만5000명으로, 3년새 66% 늘었다.

외국인이 크게 늘며 자연히 이들이 살 집이 필요했다. 면 단위까지 우후죽순 아파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거제에서 30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해온 우종모씨는 “외국인 대상 임대사업 투자자가 몰리며 아파트 공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거제시 외국인 2015년 정점으로 줄어]

하지만 버블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단지 안에 국제학교가 있는 옥포동 엘크루랜드마크, 49층짜리 장평동 유림노르웨이숲 등 고급 아파트 월세는 한때 200만~300만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그 절반에도 못미친다. 2013년 분양 당시 청약경쟁률 최고 108:1을 기록한 유림노르웨이숲은 현재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매되고 있다. 조선업 불황으로 외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거제시청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등록 외국인은 2015년 대비 15% 적은 1만2900명이다.

버블이 꺼지며 부동산 투자자들은 곤경에 빠졌다. 대우조선해양 인근 아주동에서 외국인 대상 아파트 임대사업을 했던 조미애씨가 그런 경우다. 조씨는 지난해 9월 이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국내 관광객들에게 방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조씨는 “외국인 임대 중개 서비스를 하던 업체들도 최근 1년 새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시내 중심가 아파트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월세 수입은 줄었지만 내국인 임차 수요라도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협력업체들이 기숙사용으로 빌려쓰던 다가구·다세대 주택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불황이 닥치며 협력업체 물량팀(파견 일용직 근로자)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됐기 때문이다. 아주동에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는 조귀숙씨는 “협력업체 임대 수요가 줄면서 은행 이자도 제대로 못 내는 집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과 연립주택이 느는 데엔 시청도 일조했다. 아주지구 도시개발사업 등을 추진하며 주택 공급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거제 다세대 주택과 연립주택은 총 6307호로, 2010년 대비 60%나 증가했다. 조귀숙씨는 “시청이 하는 개발사업이라 믿고 투자했다 낭패를 본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호황에 취해 위기에 대비하지 못한 건 대우조선해양만의 얘기가 아니다. 거제시도 조선업 호황이 영원히 갈 것처럼 부동산 개발에 열을 올렸다”고 비판했다.

외지에서 온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거제의 버블이 꺼지기 전 이미 수익을 챙겨 떠났다. 버블 붕괴의 상흔은 고스란히 거제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들은 전문 투자가가 아니었다. 노후가 걱정돼, 혹은 자녀 교육비를 벌기 위해 쌈짓돈을 투자했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Chapter 2. 위기는 어떻게 시작됐나

난 5월 말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여의도 1.5배 크기(약 495만㎡)의 야드는 쉴 새 없이 오가는 ‘트랜스포터’들로 분주했다. 100개 이상의 바퀴가 달린 이 대형 화물운송 차량들은 완성된 선박 블록을 도크(여러 블록을 조립해 실제 배를 건조하는 공간)로 실어날랐다. 조선소 곳곳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작업 소음은 ‘과연 이곳이 불황이 맞나’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김형식 홍보부장은 “대우조선해양이 곧 망할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2020년까지 조선소를 가동할 수 있는 수주 잔량이 남아 있다”며 “앞으로 신규 수주를 얼마나 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감이 있다고 해서 위기가 아닌 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2년간 3조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돈을 벌긴 벌었지만 남기기는커녕 오히려 가진 걸 까먹었단 얘기다. 경영이 어려워지며 지난해 직원 1700여명을 줄였다. 전체 임직원의 13%다. 대우조선해양은 그렇게 거제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흑자 자랑하다 말 바꾼 대우조선해양] 흑자 자랑하다 말 바꾼 대우조선해양

위기는 2015년 시작됐다. 그해 5월 취임한 정성립 사장은 두달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2조원대 손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1만2000원이던 주가는 나흘 만에 7000원으로 근 반토막이 났다. 회사는 과거 흑자라고 발표했던 2012~2014년 실적도 사실은 적자였다고 정정했다.

숨겨져 있던 손실의 주범은 해양플랜트였다. 강대권 유경PSG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중국이 성장하며 국내 조선업체들은 배보다 더 고부가 가치인 해양플랜트 사업에 주목했다. 하지만 핵심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과당 경쟁을 하다보니, 저가 수주가 만연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해양플랜트는 한 마디로 바다에 떠 있는 석유 공장이다. 여기서 해저유전을 시추하고 뽑아올린 원유를 처리한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배만 만들 줄 알았지, 그 안에 들어가는 원유 시설 설계는 못했다. 이때문에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유럽·미국 엔지니어링 업체에 설계를 맡겼다. 과당 경쟁으로 수주 가격을 낮춰도 설계비는 깎지 못했다. 일감을 따내고도 손실이 난 건 이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유가까지 하락했다. 해저유전 개발이 시들해 지자 선주들은 다 만들어 놓은 해양플랜트 인수를 미뤘다. 대우해양조선이 2013년 수주한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의 드릴쉽 2척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주 당시 이 배들은 2016년 6~7월 인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옥포조선소 도크에 있다. 대우해양조선은 이 배 건조대금의 80%인 1조원을 아직도 못 받았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이 부실화되자 대규모 혈세를 지원했다. 경제에 미치는 여파 때문이다. 2015년 4조2000억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에 들아간 자금은 총 13조원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앞으로 잘하면 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비싼 ‘학습 비용’을 치렀지만 그만큼 기술력을 얻었다는 거다. 김형식 부장은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다. 유가가 오르고 해양플랜트 시장이 살아나면 승부를 걸어볼만 하다”며 “고부가 가치 선박인 LNG선 등의 수주를 늘리면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초 대우조선해양은 LNG선 2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달 말 정부는 이 회사에 다시 5조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위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Outro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제조업 고문 론 블룸 전 미 철강노조 고문은 “자동차 조립 공장을 지으면 월마트가 따라오지만, 월마트를 짓는다고 자동차 조립 공장이 따라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된 대우해양조선을, 조선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할 때마다 늘 ‘경제에 미칠 여파’를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거듭 혈세를 지원했건만, 현장에서 바라본 대우조선해양과 거제의 미래는 아직도 ‘안개’ 속에 있었다.

조선업의 도시, 거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미국의 ‘러스트 벨트’처럼 몰락할 것인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처럼 노키아 몰락의 충격을 딛고 다시 부활할 것인가. ‘제조업의 나라’ 대한민국 스스로 그 답을 내놔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거제, 이대로 추락할까

발행일 : 2017.06.19

  • 기획 정선언, 손국희
  • 사진·영상 권혁재, 공성룡
  • 개발 전기환, 원나연, 김승섭
  • 디자인 임해든, 김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