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이대로
추락할까

Ⅰ. 밀려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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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제조업이 위기다.

조선ㆍ철강 구조조정이 국가적 이슈가 된지 오래다.

제조업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다. 국내총생산의 48.9%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제조업의 위기는 제조업 종사자들의 위기이기도 하다. 국내 취업자의 17%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새 정부는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해 업황이 좋아질 때까지 ‘실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11조2000억 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 예산안도 발표했다. 과연 제조업은, 제조업 종사자들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문제의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제로 갔다. 거제는 지역 경제의 80%를 조선업이 차지하고 있다. 취업 연령 인구의 절반이 조선업에 종사하는데, 불황으로 지난해 2008년 이래 최고 실업률(2.6%)을 기록했다.

우리는 2005~2016년 거제시 실업급여 수급 내역 전수 데이터(총 1만5000여건)을 손에 쥐고 ‘거제 사람들’을 만났다. 거제의 오늘이 대한민국의 내일일 수도 있다.

Chapter 1. ‘약한 고리’부터 내몰렸다 지난해 희망퇴직한 무기계약직 최순씨

실업급여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구직급여다.

원치 않았는데 실직한 근로자가 구직 활동을 할 때 받는 급여다. 지난해 거제시 구직급여 수령자는 총 6481명. 거제의 20~60세 인구(8만8000명)의 7.4%에 달했다. 이중 35%인 2270명이 1000인 이상 사업장 출신이었다. 2015년과 비교하면 전체 수급자는 82%, 1000인 이상 사업장 출신 수급자는 무려 193%가 늘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은 여파다.

[대기업 출신 실업급여 수령자 급증]
[실업급여 수령자 37%가 여성]

특이한 건 여성 구직급여 수령자 숫자다.

지난해 총 2421명으로 전체 수급자의 37%를 차지했다. 거제는 조선업의 도시고, 조선업은 대표적인 ‘남초 산업’이다. 설계에서 건조까지 대부분의 일을 남성들이 담당한다. 그런데 거제의 여성 구직급여 수령자 비율이 37%나 되는 이유는 뭘까.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여성 직원 숫자는 606명이었다. 반면 지난해에는 381명 뿐이었다.

1년 새 40% 가까운 여성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대부분 경리 업무를 담당하던 무기계약직 여성들이었다. 최순(39)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순씨는 고교 졸업 직후인 1995년부터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했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무기계약직이 됐지만, 하는 일은 21년 간 같았다. 그래도 큰 불만은 없었다. 거제에는 공무원이나 전문직 아니면 여성이 일할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최씨는 “호황기였던 2012년만 해도 연봉이 4000만원이었다”며 “거제엔 여자가 그만큼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6년 1월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 전해 여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2조원대 부실이 드러나면서다. 9월 추석 상여금이 나오지 않더니 11월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최씨 같은 경리직 여성들이 퇴직을 많이 신청했다.

“회사를 줄여도 배는 만들어야 하니까요. 필수적이지 않은 일부터 정리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일은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죠. 서운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어요.”

최씨는 그나마 운이 좋았다. 사내 커플이었던 남편은 회사에 남았다. 최씨도 아파트 감리업체에 재취업했다. 아파트가 완공되는 2019년까지만 일하는 계약직이지만, 요즘 거제에선 이만한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해 거제시 구직급여 수급자 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27%에 불과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 최근엔 남편 대신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최씨는 “요즘은 마트 캐셔(계산원) 자리도 없어서 못 구한다”고 말했다.

Chapter 2. 조선업에 한 번, 부동산에 한 번. 아주동 신도시 자영업자 김우섭씨

거제에서 최근 구직급여 수령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3대 업종은 전문 과학ㆍ기술 서비스업, 제조업, 숙박ㆍ음식업이다.

조선업과 직접 관련 없는 업종 중에선 숙박ㆍ음식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인근 아주동에서 고깃집을 하는 김우섭(51)씨의 경우가 그렇다.

[2005~2016년 실업급여 수령자 많이 늘어난 업종]
순위 업종 증감률 (%)
1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894.0
2 제조업 557.1
3 숙박 및 음식점업 496.0
2005~2016년 실업급여 수령자 많이 늘어난 업종

우섭씨는 2013년까지 대우조선해양에 다녔다. 고졸 생산직 출신으로 부장까지 승진했으니 제법 성공한 경우였다. 그런 그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 7년은 협력사 지원 업무를 했어요. 근데 2012년부터 대금 입금이 안되는 거에요. 보통 오전이면 협력사 통장에 돈이 꽂히는데 은행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입금이 안됐죠. 회사는 흑자라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어려워지면 다들 나올테니 그 전에 나가서 기반을 잡자’ 싶었습니다.”

퇴직을 결심한 김씨의 눈에 아주동이 들어왔다. 아주동은 2000년대 후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배후지로 개발된 신도시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리며 상권이 커졌다. 김씨는 옥포동 집을 팔고 퇴직금에 은행 대출까지 끌어들여 땅을 사고 3층짜리 다가구 건물을 지었다. 1층 상가에 식당을 내 직접 운영하며, 2ㆍ3층은 협력업체 기숙사로 임대했다.

처음엔 월 200만원 정도 하는 은행 이자를 갚고도 연 5000만원 이상이 남았다. 식당은 늘 꽉 찼고 임차인들은 따박따박 월세를 냈다. 한데 딱 1년뿐이었다. 지난해 희망퇴직이 본격화되더니 식당에 빈자리가 생기고 임차인은 월세를 밀렸다. 협력업체 한 곳은 기숙사로 쓰던 방을 아예 빼버렸다. 불과 1년 만에 은행 이자 내는 것도 버거워졌다.

김씨는 요즘 잠이 안온다. 전재산을 투자한 건물을 날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몇달 전 근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다. 건물 주인은 은행 빚을 갚지 못해 두 손을 들었다. 김씨는 “나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며 “신문에서나 보던 ‘하우스푸어’가 내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Chapter 3. ‘블루칼라 중산층’은 없다 정년 2년 앞두고 희망퇴직한 장오씨

지난해 거제시 실업급여 수령자를 연령별로 쪼개보면 60세 비중이 가장 크다(5.72%). 이어 58세(4.51%), 59세(4.38%) 순이다. 하지만 이들 연령이 거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에 불과하다. 인구 비중이 가장 큰 35세(2.2%)의 지난해 실업급여 수령자 비중(3.1%)과 대조적이다. 정년을 1~2년 앞둔 50대 후반이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오(58)씨처럼.

[50~60대 실업급여 수령자, 인구 비중의 4~5배]

오씨는 지난해 11월 대우조선해양을 희망퇴직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해고였다. 작업반별로 희망퇴직 정원이 정해져 내려왔다. 회사에선 정년을 1~2년 남긴 직원들에게 잔업 특근을 주지 않았다. 연월차 수당도 없애겠다고 통보했다. 특근과 연월차 수당 등을 제외하면 연봉이 반토막 난다. 차라리 위로금이라도 받는 게 낫겠다 싶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장씨는 “딸 키우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고 말했다. 그가 입사한 그해 태어난 딸이 올해 33살이다. 그 33년 간 장씨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했다. 회식을 할 때도, 문상을 갈 때도 사복(社服) 차림이었다. 회사가 그였고, 그가 회사였다. 회사는 자부심이었고, 자랑이었다. 하지만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희망퇴직과 함께 산산히 부서졌다.

그는 요즘도 사복 차림으로 조선소로 출근한다. 하지만 그의 사복엔 ‘대우조선해양’ 대신 ‘경민기업’이란 마크가 붙어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소속 회사만 달라진 것이다. 바뀐 게 또 있다. 지난해 연 9000만원이 꽂혔던 그의 월급 통장에 올해는 연 3000만원만 입금된다.

“전에는 철마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녔어요. 남부럽지 않았죠. 한데 이젠 마트에서 생필품을 살 때도 가격을 봅니다. 자식이라고 딸 하나 뿐이고 다 키워서 경제적 압박이 심하지 않은 편이예요. 그런데도 아내도 저도 참 힘듭니다. ”

고졸 생산직이지만 대졸 사무직 못지 않게 사는 ‘블루칼라 중산층’. 장씨가 그랬다. 하지만 그는 이제 “중산층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의 제조업이 몰락하며 중서부ㆍ북동부의 산업 도시들은 일명 ‘러스트 벨트(Rust Belt)’가 됐다. 이곳 블루칼라 백인들은 심한 박탈감과 소외감에 시달렸고, 그 분노의 화살을 자신들과 일자리 경쟁을 벌이는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돌렸다. 그 결과 일자리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과연 미국만의 얘기일까.

Chapter 4. 등 떠밀린 50대, 제 발로 나온 30대 입사 5년 만에 희망퇴직한 양승훈씨

지난해 연령대별 거제시 구직급여 수급자 비중은 30대(28%)가 50대(27.2%)보다 많다.

하지만 거제 사람들은 “30대 퇴직자와 50대 퇴직자는 결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50대는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퇴직을 했지만, 30대는 자발적으로 ‘진짜’ 희망퇴직을 했다는 거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을 나와 경남대 사회학과 조교수가 된 양승훈(35)씨가 그런 경우다.

[2016년 실업급여 수령자, 30대 가장 많아]
순위 연령 수령자(명) 비율(%)
1 30대 1812 28.0
2 50대 1760 27.2
3 40대 1336 20.6
4 20대 823 12.7
5 60대 725 11.2
6 10대 18 0.3
7 70대 7 0.1

승훈씨는 퇴직 당시 전략혁신담당(기획조정실)에서 일했다. 취업 후 5년 간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 거제로 내려왔다. 다른 근무 여건은 흠 잡을 데 없었지만, 서울이 아닌 거제에서 일해야한다는 게 좀 아쉬웠다.

그런 와중에 2015년 회사가 희망퇴직을 받았다. 처음에는 정년을 앞둔 부장급 이상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사원ㆍ대리급으로 확대됐다. 연봉도 삭감됐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거제, 부울경(부산ㆍ울산ㆍ경남) 출신과 서울 출신 사이에요. 서울 출신은 모이면 이직 얘기를 했어요. 누가 연차라도 쓸라치면 ‘어디 시험 보러 가냐’고 물었죠. 지역 출신 직원들은 그걸 싫어했어요. 미묘한 감정의 골이 생겼죠.”

서울을 오가던 젊은 엔지니어들은 건설사나 정유회사, 중국 조선업체 등으로 이직했다. 경영직 출신도 회계나 재무ㆍ인사 등 자신의 전공을 살려 타업종으로 옮겨갔다.

양씨 같은 서울 출신 20~30대 직원들이 거제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은 가족 탓이 크다. 거제엔 여성이 일할만한 ‘좋은’ 일자리가 없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남성 직원 비율이 90%가 넘는 조선업체 뿐이다. 계속 일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친구, 아내들은 그래서 거제에 가기 싫어한다. 어쩔 수 없이 젊은 남성들은 거제와 서울을 오가는 기러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양씨도 결국 퇴직을 선택했다. 정해 놓은 진로는 없었다. 거제의 미래가 궁금해 잘 나가던 영국의 조선업 도시를 여행할 계획을 세웠다. 여행기를 써 비행기값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유료 콘텐트 판매사이트인 ‘퍼블리’에서 펀딩을 받았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 산학협력중점교수 채용에 지원했던 경남대에서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젊은 인재들이 다른 업종으로 흩어졌어요. 핀란드 수출의 25%를 담당하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벤처업계에 인재가 공급된 ‘노키아의 선물’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Outro

국내 취업자의 17%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의 위기는 곧 이들의 위기다. 삼성중공업이 최근 2조원 대 해양플랜트 수주에 성공하자 “조선업이 되살아 날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연 조선업은 부활의 돌파구를 찾은 걸까.

거제, 이대로 추락할까

발행일 : 2017.06.15

  • 기획 정선언, 손국희
  • 사진·영상 권혁재, 공성룡
  • 개발 전기환, 원나연, 김승섭
  • 디자인 임해든, 김현서
  • 데이터분석 코드나무 김승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