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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지방방송 좀…" 농담에 북한 女안내원 '폭소'

온라인 중앙일보 2012.11.26 08:32



낯선 사람들 만나도 경계심 없어
조국·통일 언급에 반색하며 화답
김일성·주체사상을 '예수'와 비유











































일정 동안 통일 토론회에 참석한 미주 대표단 아홉 명과 북측 안내원 한 두명 수행 사진기자와 비디오 기사가 대체로 함께 중형 버스로 이동했다. 일행 중 처음 북한에 간 이가 다섯 명이었으니 보는 것마다 신기했고 묻는 것도 많았다. 버스는 항상 와글와글 잡담으로 가득했다.



"잠깐 거기 지방방송 좀 끄고 여기 좀 보세요." 우리팀 리더가 전달사항을 위해 주목을 원했다. 별말 없이 앞을 보고 있던 북측 안내원이 귀엣말로 묻는다. "거 지방방송 끄라는 게 뭔 소립네까?" "잡담 그치고 주목하라는 뜻이지요. 남조선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요." 안내원은 소리를 죽이며 큭큭 거린다. 한참 가다가 버스 앞쪽에 있던 안내원이 뒤쪽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뭔가 전할 말이 있는 듯했다. "거 지방방송 좀 끄시라우." 우리 일행은 폭소가 빵 터졌다. 일행 중 한 명이 보탰다. "북조선엔 지방방송 없잖아." 또 한번 요절복통으로 버스가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간간이 '과일남새상점'이라고 적힌 상점이 보였다. '남새'는 '채소'에 해당하는 순수 우리말. 일행 중엔 열 살 남짓해 미국에 온 1.5세 목사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그는 북측 인사들과 함께 어울린 자리에서 '남새'에 관한 고백(?)을 했다.



"나는 북조선에서 왜 '남'쪽에서 날아온 '새'를 잡아서 팔까 그걸 어떻게 알고 잡을까? 남쪽 새들은 특별한 맛이 라도 있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북측 인사들이 배꼽을 잡는다. 웃음을 겨우 진정시킨 북쪽 인사들은 "이거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포복절도할 겝니다. 지금까지 들은 유모아(그들은 유머를 이렇게 말한다) 중에서 최고로 웃깁네다."



말이 통하니 이렇게 웃음보도 같았다. 생전 처음 가는 낯선 나라 사람들과 이렇게 소통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일행들은 7박 8일간 여정을 거치며 북쪽 주민들을 틈나는 대로 만났다. 다들 "이 사람들 참 순진하다"는 느낌을 전했다. 낯선 사람을 무턱대고 믿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인 자본주의 생태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일까.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속 얘기를 툭툭 꺼내놓기도 한다. 함께 사진 찍자고 하면 거리낌없이 응한다. 가족들이 모여 있길래 "모여 보세요 사진 하나 찍을게요" 했더니 군말없이 모여 포즈를 취한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경계심이 없나 싶었다. 말 하는 데 별로 주저함도 없고 말주변도 좋았다. 어릴 때부터 사상교육을 받으며 발표력을 키운 덕이 아닐까 싶었다.



말을 붙이면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 '재미동포'라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세계 어디에 살든 다 한민족 아닙니까. 요즘은 중국동포들도 많이 오십니다. 우리 조국은 동포들이 오시면 극진히 모신단 말입니다. 통일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20대 여성)



북한에는 노동당 기구로 해외동포원호위가 있어 정책적인 부문을 담당하고 행정부처로 해외동포사업국이 별도로 있어 관광 안내 등 실무를 맡는다. 토론회는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렸다. 해외동포들을 매우 잘 대접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조국' '통일' '동포'란 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액센트를 주며 대응했다. 이쪽에서 먼저 그런 말을 꺼내면 반색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번에 해외동포 통일 토론회하러 왔습니다"고 하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아 그렇습니까. 좋은 일 하십니다. 어제 테레비에서 토론회 보았는데 그분들이시군요." 북쪽 사람들과 말문을 틀 때 이런 단어를 먼저 꺼내면 대화를 이어가기가 훨씬 쉽겠다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조국과 김일성 주석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탈북자들은 자기만 잘 살겠다고 조국을 배반한 사람들 아닙니까. 자본주의에서 살기 힘들어 다시 돌아온 사람도 많습니다. 조국만한 데가 어데 있갔습니까." (20대 상점 점원)



평양 곳곳에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슬로건이 자주 눈에 띈다. 북한 주민들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부심도 이런 구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숙소 인근 '아리랑'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북측 관료가 마주 앉아 있던 최재영 목사에게 단호한 어투로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목사님에게서 예수님을 떼어 낼 수 있습니까? 없지요? 이슬람교 믿는 사람들한테서 마호메트를 떼어 낼 수 있습니까. 없죠? 마찬가지로 저나 우리 인민들한테서 수령님과 주체사상을 떼낼 수가 없습니다." 김일성 주석을 경외하는 것과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체제와 이념은 그들과 우리의 사고를 많이 다르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껍데기를 벗겨 보면 현실에 부대끼며 살고 있는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평양=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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