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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설마 내 부모가…’ 무관심이 치매 부른다

중앙일보 2012.11.26 02:00 건강한 당신 4면 지면보기
매일 진료실에서 치매환자와 가족을 만나는 의사로서 최근 잇따른 비보를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치매를 앓고 있던 70, 80대 노인 환자와 그 곁을 지키던 보호자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는 보호자의 보살핌이 절실한 질병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심리적 부담이 크다. 반면에 보호자는 환자의 병이 깊어져 그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우울증에 빠지고 간병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각해진다.



 특히 치매환자 보호자가 겪는 간병 스트레스의 주요한 원인은 치매가 진행될수록 환자가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상실해 간다는 것이다. 치매라고 하면 이름과 나이, 가족 얼굴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인지기능 장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대소변 처리를 못하거나 세수나 양치질, 옷 갈아입는 일, 목욕과 같은 아주 평범한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저하되는 증상도 나타난다. 즉 치매환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 항상 간병하는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치매의 조기 진단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등의 가사활동이나, 전화를 걸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 수행 능력의 저하는 치매 초기에 쉽게 발견된다. 따라서 가족이나 주변인이 유심히 살피고 관심만 갖는다면 치매 초기에 병을 발견하고 치매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검사와 치료법이 등장하고 있다. 환자 수준에 맞게 시행하는 다양한 인지기능 검사를 비롯한 양전자단층(PET) 촬영을 통해 뇌 속에서 치매를 유발하는 독소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를 찾아낸다거나 혈액검사를 통한 혈액지표로도 치매를 예견한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치료하는 치료제도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먹는 약 이외에도 피부에 붙이는 동전 크기의 패치제가 있어 스스로 약을 챙겨 먹기 힘든 치매 환자의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국내 치매환자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예전에 비해 치매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 및 관심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나, 환자와 가족의 피부에 와닿는 대책마련과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별로 치매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예산·인력지원의 한계, 관심 부족, 홍보 미흡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정에서도 ‘설마 내 부모나 가족 중에서 치매환자가 생길까’ 하며 남의 일로만 여긴다. 하지만 치매는 특정한 사람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주름이 생기듯 뇌도 늙어간다. 따라서 뇌세포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고,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치매의 위협에 안전지대란 있을 수 없다.



해븐리 병원 이은아 원장 (신경과 전문의, 대한치매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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