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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어진 제3후보 잔혹사 … 안철수, 같은 듯 다른 길

중앙일보 2012.11.26 01:22 종합 8면 지면보기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사퇴로 18대 대선에서도 ‘제3후보 잔혹사’가 이어졌다. 1987년 직선제를 도입한 뒤 92년 대선에서부터 제3후보는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92년 14대 대선에선 김영삼 민주자유당·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양김 대결 속에서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반값 아파트’ 등의 상식 파괴 공약으로 기성 정치권을 공략했다. 하지만 그는 16.31%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 그해 ‘바바리 유세’로 인기몰이를 했던 박찬종 후보 역시 6% 득표율에 그쳤다.

조직에 밀려 대선 영향 못 줘
안, 퇴장하고도 장외 변수로



 97년 15대 대선에선 이인제 후보가 집권 여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며 한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앞섰지만 그의 정치실험도 3위(19.2%)로 끝났다. 2002년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는 월드컵 열기 속에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올랐지만 후보 단일화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밀렸다. 17대 대선에선 유한킴벌리 최고경영자 출신의 문국현 후보가 창조한국당으로 독자 출마했지만 선거구도에 큰 변수가 되진 못했다. 그의 득표율은 5.82%였다.



 안철수는 물론 정몽준처럼 단일화 승부를 마무리하지도 않았고, 문국현처럼 단일화를 거부하고 독자 출마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 역시 정주영·박찬종(14대)→이인제(15대)→정몽준(16대)→문국현(17대)처럼 제3후보의 길을 밟은 셈이다. 정치권은 이를 ‘뒷심 부족’으로 설명한다. 제3후보들이 파격적인 공약이나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된 이미지로 한때 높은 관심과 지지도를 만들었지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양당 구도에선 조직과 집권 안정감에서 밀렸다는 의미다. 역대 최강의 제3후보로 평가받던 안철수도 이달 들어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양자 대결 속에서 안철수라는 정치적 존재는 여전히 장외 변수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다. 선거일에 임박해 그가 문 후보를 전폭 지지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이면 젊은 층과 중도층의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그를 지지했던 중도층이 어디로 갈지가 대선의 물음표로 남은 셈이다. 민주당의 한 실무 당직자는 이런 상황을 놓고 “(단일후보 자리를 민주당에) 준 건지 안 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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