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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 女論] 허정숙에게 남은 가정폭력의 상처

중앙일보 2012.11.26 00:45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허O숙--그를 아는 이는 그의 양미간에 상처가 있는 것을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다.(…)몇 해 전에 그가 자기의 남편 되었던 모씨와 사랑이 파탄되어 최후담판을 할 때에 서로 권투시합을 하다가 아차차…. 상대편의 맹렬한 주먹이 그의 안경을 딱 치고 그 바람에 안경의 유리쪽이 그의 양미간을 침범한 것이었다. 기념으로는 한평생에 없어지지 않는 큰 기념이다.”



 이 글은 ‘가의사(假醫師)’라는 익명으로 잡지 ‘별건곤’에 발표된 ‘경성 명인물 신체 대검사’(1932.7)에 실린 한 대목이다. 여기에 여성 유명 인사들의 신체비밀을 폭로하면서 당사자가 부끄러워할 거라며 이름에 O을 넣었는데 그중 하나가 ‘허O숙’이었다.



 당시 유명한 ‘허O숙’은 허정숙과 허영숙 두 사람뿐이었다. 허영숙은 이광수와 1921년에 결혼해 1946년에 이혼했기 때문에, 몇 해 전 남편과 헤어지며 담판을 짓는 상황이 가능했던 인물은 허정숙이다. 즉 당시 사람들에게는 ‘허O숙’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 가명 아닌 가명이었고, 윗글은 그녀의 사생활을 은근히 폭로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허정숙(許貞淑)의 아버지는 인권변호사이자 신간회 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헌(許憲)이었다. 허정숙 역시 조선여성동우회, 근우회 등에서 활동하고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한국근대여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회주의 항일 운동가다.



 하지만 당대 남성 지식인들은 그녀의 민족적·사회적 활동보다 그녀의 스캔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1921년 사회주의 운동가 임원근과 결혼했다가 1925년 남편이 검거된 뒤 송봉우와 동거를 시작하고, 1929년 송봉우가 전향하자 다시 그와 헤어지고 중국 항일운동단체에 있던 최창익과 결혼했는데, 이러한 과정들이 남성 지식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혼할 때 남편에게 맞아 그녀의 얼굴에 큰 상처가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서로 권투시합을 했다’고 희화화하고, 그 상처를 ‘기념’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당한 것은 분명 ‘폭력’이었고, 웃어넘길 일이 못 되었다. 그럼에도 당시 가장 주체적인 여성 지식인조차 남편에게 받는 폭행과 이를 조소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기력했던 것이다.



 아직도 숨겨진 가정폭력이 많다. 특히 오늘날 다문화가정 내의 폭력은 살인과 자살까지 야기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세계 여성 폭력 추방주간(11.25~12.10)’을 맞아 이에 대한 근절 방안 고민이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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