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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박근혜·문재인의 사랑과 정의

중앙일보 2012.11.26 00:44 종합 32면 지면보기
전영기
논설위원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죠. 자베르 경감의 정의감이 장발장의 배고픈 범죄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에게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발장을 구원한 건 범죄를 모른 체한 신부의 사랑이었습니다. 정의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잔인함을 경계하자는 겁니다. 정의와 사랑의 균형감각은 정치에도 필요합니다. 사랑은 때로 잔인한 정의와 싸워야 합니다. 사랑은 가끔 도그마에 빠진 정의를 깨우치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정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의 탈락으로 대선구도는 박근혜 대 문재인, 2파전으로 간명하게 정리됐습니다. 오바마 대 롬니같이 미국식 맞짱 뜨기, 노무현과 이회창같이 2002년식 좌우격돌입니다.



 두 후보가 승리하기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하는 쪽이 이길 겁니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독립선언’을 하십시오. 유권자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원합니다. ‘노무현 비서실장’을 원치 않습니다. 문 후보는 관용과 포용, 통합과 품격이란 면에서 노 대통령보다 뛰어난데, 결정적인 순간에 노무현 그림자에 숨더군요.



 노무현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문재인 햇살을 비추지 못하는 건 문 후보가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노를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친노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인간적 네트워크를 넘어서 오늘날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죠. 친노는 반칙, 특권, 기득권과 정의의 싸움을 벌여 오면서 부분적으로 잔인한 면모를 띠게 됐습니다. 자베르 경감처럼요. 안철수가 후보자리를 쫓기듯 내던진 배경엔 친노세력, 혹은 친노문화의 노골적이거나 협박적인 여론몰이가 일부 작용했습니다. 정의의 상징인 노무현 후계자, 문재인의 집권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게 친노문화의 정신구조입니다.



 문 후보는 자신이 함께 참여한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편가르기, 반대세력에 대한 적대와 증오에 있다는 걸 직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문제가 정치민주화에 치중하다 사회민주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틀린 얘기입니다. 노무현의 사람들이 폐족이 된 건 사회민주화를 못해서가 아닙니다. 온 나라를 두 패로 갈라 싸움을 벌인 노무현식 정의감 때문이랍니다. 문 후보도 그걸 잘 알 텐데 편가르기 반성을 안 하는 건 노무현의 본질을 건드릴 용기가 없기 때문일까요. 문 후보는 30년 친구였던 노무현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안철수 지지층과 중도층을 잡고 박근혜 지지층을 흔들어댈 수 있을 겁니다.



 똑같은 이유로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독립선언’을 해야 합니다. 박 후보가 용기 있게 직시해야 할 건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성으로부터 평생 한과 응어리를 안고 사는 인구층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박근혜의 집권은 이들의 한과 응어리에 다시 생채기를 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박 후보가 ‘아버지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천륜의 애달픔에 스스로 갇혀 있다면 반(反)박정희 인구층의 한과 응어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반박정희 인구층의 강인함이 동심원처럼 확산돼 박근혜 지지층은 45%선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후보가 마(魔)의 45%를 깨려면 인천상륙작전 하듯 반박정희 인구층의 한복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박정희의 과오를 저 감성의 밑바닥에서부터 회개하듯 처절하게 표출하고, 그들의 한과 응어리를 눈물로 녹여줘야 합니다. 감성은 이성이 모르는 걸 알고 있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박근혜는 비로소 역사와 화해하고 반쪽이 아닌 온전한 대통령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박정희 딸의 시대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싶어합니다. 박정희의 과(過)를 철저하게 감성적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박정희의 공(功)을 무시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중은 박 후보가 아버지로부터 반쯤 독립하다 멈춰 있다고 직관하고 있습니다. 불철저하다는 거죠. 박 후보는 박정희 독립선언으로, 안철수를 지지했지만 민주당은 싫어해 허탈감에 빠진 중도층을 잡기 바랍니다. 노무현 독립선언이 먼저냐, 박정희 독립선언이 먼저냐. 역사는 대선을 통해 이렇게 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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