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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상이 너무 많다 잘하라고 주는 건가 잘했다고 주는 건가

중앙일보 2012.11.26 00:37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자고 나면 바뀌는 정치판. 돌릴 때마다 모양이 바뀌는 요지경 속 세상 같다. 마음이 허한지 배 속이 허한지. 근처 먹자골목에 갔다. 간판마다 ‘맛집 선정’ ‘방송프로 선정’ ‘신문 격찬’. 다들 맛있단다. 그래서 상(賞)도 받았단다. 그중 ‘TV에 안 나온 집’이라 써놓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당당한 글귀가 맘에 들어서다. 맛 또한 실망시키지 않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2004년이던가. 엉겁결에 여성단체 대표직을 맡아 일을 익히고 있던 중, 희한한 전화를 받았다. 무슨 기관인지에서 상을 주겠단다. 아직 한 일도 없는데 왜 주느냐고 물으니 "잘하시라는 겁니다”하며 X월 Y일 상을 받으러 오란다. 납득은 안 갔지만 마다할 이유도 없고 아는 사람들에게 상금 받으면 한턱 쏜다며 자랑까지 하고 들떠 있던 중, 같은 사람이 또 전화를 했다. 상을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소정의 비용은 내가 부담해야 한다는 거다. 갑자기 기분이 언짢아졌다. "상 받으며 돈 받는 건 많이 봤지만 상 받으며 돈 준다는 얘기는 여태 들어본 적 없다”며 거절해 버렸다.



 그 후로도 서너 차례 같은 전화를 받았지만 까칠하고 비아냥대는 말투로 거절했었다.



 상이란 무엇인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해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 하는데. 수없이 많은 상들. 어릴 적 받았던 웃는 아이가 그려진 ‘참 잘했어요’부터 며칠 전 위험을 무릅쓰고 도둑 잡았다고 수여한 모범시민 상까지. 주는 사람 흐뭇하고 받는 사람 가문의 영광인 상. 많이 주면 줄수록 좋은 걸까.



 치 떨리게 맛없던 식당의 간판 ‘맛집 선정’ 문구나, 하루 만에 찢어진 지난여름 샀던 모기장 박스 한 귀퉁이에 적힌 ‘XYZ 선정 좋은 상품 상’같이 혹시 너무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상은 귀해야 그 값어치도 빛나고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부러움과 자극을 줄 수 있다. 식당마다, 물건마다,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 남발한다면 상이 가진 본래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닌지.



 근처 잘 아는 50대 아줌마가 있다. 농촌에 살지만 농사일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른 일에만 분주한 아줌마다. 그녀가 며칠 전 상을 받았다. ‘농어민 여성 후계자 공로상’이라던가. 농촌에서 50대 젊은(?) 여자는 귀하기에 다른 여자들에게도 용기를 주려 한 것 같다. 주면서 "앞으로는 농사일 잘하라” 했다는데. 그럼, 상이란 잘하라고 주는 건가, 아님 잘했다고 주는 건가.



 ‘누가 수상을’ 했을 때 수긍하는 경우도 있지만 ‘헐’ 잘하라고 주는 건가 갸우뚱하게 만드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어쨌거나 칭찬은 많이 해주는 게 좋다던데, 상이란 좋은 거니까 많이 주는 게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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