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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경쟁이 교육의 질을 높였나

중앙일보 2012.11.26 00:36 종합 35면 지면보기
강홍준
논설위원
주부 A씨는 중3 아들을 보낼 고교 3곳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그런데 좀 더 합리적으로 학교 3곳을 비교해 결정하고자 한다. 무엇을 가지고 비교할까.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중요하고, 학교의 대입 성적도 빠뜨리면 안 될 거 같고…. 이렇게 학업성취도 수준, 학비, 학교폭력, 교우관계까지 포함해 6가지를 가지고 비교해 보기로 했다. 경우의 수는 18개(3X6)다.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슈워츠가 저서 『선택의 심리학』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선택권이 커지면 과부하가 걸린다.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이 압박으로 작용한다. 쇼핑이 유사한 운동량을 지닌 다른 활동에 비해 훨씬 피곤한 건 선택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자율형 사립고, 마이스터고, 기숙형 공립고 같은 새로운 학교들이 생겨나면서 선택해야 할 일은 종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이렇게 학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하면 선택 대상인 학교들은 자연스럽게 경쟁하게 되고, 이런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이 향상된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미국 등의 학교 선택이론에 입각한 정책이다. 미국 뉴욕시나 시카고시는 같은 논리로 학업성취도가 낮아 선택받지 못하는 공립학교를 폐쇄 조치하는 등 공교육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중3 학부모들은 넘쳐나는 학교 공시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학교 중 하나를 고르느라 고민하고 있고, 학교들은 선택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데까지 왔다. 특히 자율형 사립고는 일반고에 비해 우선 선택되지 않으면, 일반고 중에서도 사립고는 공립고에 비해 선호되지 않으면 존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학교는 학생 모집에 필사적이다.



 그 결과 지난 24일 전국 자율형 사립고 49곳이 신입생을 모집했는데 16개교가 2년 연속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서울 용문고와 광주 보문고는 더 이상 자율형 사립고로 운영하지 못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정원의 절반 이하밖에 못 채운 학교들도 여럿이다. 이에 비해 이화여고는 4대1이 넘는 등 선호 학교로 자리매김됐다.



 그렇다면 분명 교육 소비자들이 선택할 학교가 많아졌는데 왜 이런 쏠림이 나타날까. 무엇보다 한 번 미달 학교는 계속 미달이고, 선호 학교엔 학생들이 계속 몰리는 선호·비선호 패턴이 이어지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과거의 패턴을 답습하는 등 오히려 단순해진다. 예를 들어 대안이 모두 10개가 있고,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를 합리적으로 정하려 한다고 가정하자. 선호 순위를 구하려면 대안을 두 개씩 묶어 총 45번을 비교해야 하는데 아무리 이런 방식이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이런 복잡한 선택 행위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이나 우리나 선택제의 최종 목표는 교육의 질 향상에 있다. 경쟁을 거쳐 우리의 학교는 이 단계에 도달했을까. 경쟁만 과열된 상황이고, 성과는 미미하다. 선호 학교들은 거침없이 잘 나가나 비선호 학교들은 일종의 악순환에 빠졌다. 학생이 선택하지 않다 보니 정원 미달 현상이 나타나고, 다시 비선호 학교란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비선호 학교는 차라리 교육당국이 학생을 강제 배정해 주던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과거로의 회귀가 답일까. 대선 후보 공약엔 자율형 사립고 등 다양한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것도 있다.



 학부모의 선택권이 커졌다고, 그래서 학교들이 경쟁하게 됐다고 개별 학교의 교육의 질이 거저 향상되진 않는다. 역으로 선택이 없던 과거로 돌아간다고 저절로 교육의 질이 좋아질 리 없다. 결국 비선호 학교들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학교 선택제의 핵심 과제다.



 영국 런던의 바킹앤다겐햄 자치구의 로버트 클락 스쿨은 이미지 쇄신(rebranding)에 성공한 좋은 사례다. 이 학교는 1996년만 해도 런던 공립학교 가운데 학업성취도 꼴찌의 전형적인 비선호 학교였다. 영국 노동계급과 이주민 거주지역이라는 지역 여건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이 학교는 최근 4년 연속 학업성취도 최우수 학교가 됐다. 폴 그랜트 교장은 “변화를 위한 비전을 세우고, 이를 교사·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이를 하나하나 실천하는 데 족히 몇 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교 교사, 교장, 지역사회가 변화하겠다는 노력이 쇄신의 핵심이다. 그 다음엔 교육당국의 지원이다. 선호 학교는 그냥 놔둬도 잘 굴러갈 수 있다. 오히려 열악한 조건에 있는 비선호 학교들 가운데 쇄신 의지가 있는 학교에 재원을 몰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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