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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위한 집이 국민 대표 주택으로 이젠 해외로 수출

중앙선데이 2012.11.25 01:03 298호 22면 지면보기
1 마포아파트[사진 국가기록원]
한국에서 집 이야기에 아파트를 빼놓을 수는 없다. 마포아파트가 지어진 1964년 기록에 의하면 당시 공동주택 수가 500호 정도였다. 70년 와우아파트 참사를 딛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공동주택은 전체 주택에서 60%를 차지하고 아파트만 900만 호에 이른다. 한국 인구의 절반인 2500만 명이 살고 있는 집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양면성을 지니고 진화했다. 국민주택이라는 서민용 주거 공급을 위해 값싸게 조성된 택지에 저렴한 생산 방식에 따라 단기간에 많은 호수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다. 70년대 한강변을 따라 동부이촌동, 반포, 압구정, 잠실지구 등이 해당된다.

최명철의 집 이야기 <12> 한국형 아파트의 어제와 오늘

80년 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주택 500만 호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설정됐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등 세계적 행사에 걸맞은 도시 정비와 주거 형식이 이른 시간 내에 필요해지면서 ‘한국형 아파트’의 중흥기가 시작됐다. 6공화국의 200만 호 건설 구호에 따라 분당·일산 등 다섯 곳에 초단기에 건설한 ‘한국형 신도시’도 여기에 일조했다. 이로써 90년대에는 주택 정책이 서민이 아닌 국민 모두를 상대하는 1가구 1주택 정책으로 바뀌었다. ‘IMF 위기’도 잠깐, 내수 진작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규제 완화 정책들은 새로운 주거 상품들을 출현시켰다. 즉 ① 30년을 유지해 온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따라 민간 건설 회사들은 저마다 브랜드와 신상품 개발에 몰두했고, ②상업용지에 주거를 허가함에 따라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의 전성시대를 열어주었으며, 급기야 ③멀쩡한 단독 주택지들을 정비구역이라 하여 아파트 개발을 허용하도록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함으로써 ④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울시장은 뉴타운이라는 획기적인 포장 상품(?)을 창출해내기에 이르렀다. 2000년대는 한국형 아파트의 최고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2 반포아파트[사진 중앙포토]3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만물석상[사진 삼성물산]4 반포 래미안퍼스티지34평형 평면도 5 73년도 반포1단지 아파트 32평형 평면도
아파트 진화의 대표적 공간, 반포
한국형 아파트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제 세계화됐다. 중국 등 대부분의 신흥국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주거 해결 방안이 됐다. LA 주상복합이나 런던 온돌 마루 아파트 등은 선진국이 도시 회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채택한 방안이다. 건축에 철과 콘크리트가 사용된 이래 서민 주거의 대명사였던 아파트(apartment)가 지속 가능한 보편적인 인류 주거 양식으로 얼마만큼 진화 가능한지 시험받고 있다 하겠다.

반포 지역은 한국형 아파트 진화의 대표적인 현장이다. 70년 현대건설, 삼부토건, 대림산업이 공동 출자한 회사인 경인개발주식회사가 시행한 한강 개발사업으로 반포지구 19만 평 매립공사가 이루어졌고, 지금의 반포천에서 한강 제방 사이의 택지가 개발됐다. 이곳에 주택공사가 5층 판상형의 일률적 구조로 전형적인 서민용 주거 단지인 반포 1, 2, 3지구를 개발해 70년 중·후반 입주가 이루어졌다. 이로부터 30년 만에 이 지역은 최고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주변 지역의 변화나 재건축이라는 제도적 뒷받침 외에도 건설회사나 설계업체들의 경쟁적인 상품 개발에 따른 결과다.

반포 래미안퍼스티지에서 보이는 한국형 아파트의 진화 양태는 크게 다섯 가지다. 우선 규모다. 도시의 블록 하나가 한 단지로 구성돼 초등학교 하나를 중심으로 2000~3000가구의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구성돼 있다. 도시성(Urbanity)을 자체적으로 완결시킬 수 있는 규모로의 진화다. 애매한 규모의 담 쳐진 단지(Gated Community)들이 모여서는 이룰 수 없는 커뮤니티다.

두 번째는 평면. 브랜드 가치를 내걸고 주부 모니터링 요원 등을 활용한 연구개발로 경쟁적 발전이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있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 등을 통해 탄생한 서비스 면적의 ‘마법 같은’ 확장은 소비자 만족도는 높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한국형 아파트만의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인테리어. 규모의 경제로 가능해진 좋은 자재와 기구의 사용, 최상의 설계와 시공은 선택사양을 빼놓더라도 최고급 수준이다. 온돌 마루의 우수성은 이미 알려졌고, 각종 빌트인 전자기기나 수납공간 개발은 입주자의 개별 인테리어로는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 됐다.

네 번째는 조경. 32층으로 확보된 개방감 속에 잘 어우러진 옥외 공간의 조경시설은 이 단지 최고의 자랑거리다. 경북에서 온 1000년 된 느티나무 고목을 비롯해 한강의 심층수와 빗물을 정화해 만든 1200평 규모의 인공호수와 금강산 만물상을 재현했다는 만물석산 등은 도시 속 자연공원이다.
마지막으로 편의시설이다. 지하주차장은 인근 센트럴시티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넓고 여유롭다.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도 호텔 수준이다. 골프 연습장, 피트니스센터, GX룸, 연회장, 남녀 독서실, 사우나와 수영장 등은 단지의 규모에 의해 가능해진 시설이다.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의 인생 고스란히
이러한 한국형 아파트의 공통적인 특성들은 최근의 미분양 사태에도 대부분 일반화돼 있다. 그만큼 수준이 높아졌고 값어치도 상승돼 있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주거 양극화의 주범이기도 하다.아파트는 집이다.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만큼이나 아파트도 압축 발전했다. 각종 시빗거리의 대명사이기도 했고 서민들의 애환이기도 했으며 복부인의 투기 대상이기도 했다. 경제 부침에 따라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의 인생도 출렁인다. 그 속에서도 한국형 아파트는 진화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는 이상 집으로서의 미래가 있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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