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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제국의 몰락 … CEO 오텔리니 ‘인텔 아웃사이드’

중앙일보 2012.11.21 00:36 경제 2면 지면보기
인텔의 CEO인 폴 오텔리니가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2 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연설하는 모습. 인텔은 오텔리니가 내년 5월 물러난다고 19일 공식 발표했다. [로이터=뉴시스]


세계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의 ‘황제’ 인텔 이사회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발칵 뒤집혔다.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 최고경영자(CEO)가 갑자기 내년 5월 용퇴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1968년 설립 이후 5명의 CEO를 거친 인텔은 중국 공산당을 닮았다는 평을 들어왔다. 현직 CEO가 일찌감치 후계자를 낙점한 뒤 여러 부서를 거치며 경영수업을 쌓게 해와서다. 그런데 후계구도를 미처 정하기도 전에 오텔리니가 물러나겠다고 하자 이사회가 당황했다.

정년 3년 앞두고 “내년 5월 용퇴”
모바일에 밀려 PC시장 위축
순익 14% 감소 등 실적 악화



 이사회 만류에도 오텔리니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인텔은 19일 뒤늦게 그의 용퇴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월가에선 벌써부터 인텔이 설립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를 스카우트해 올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오텔리니가 정년을 3년이나 남겨두고 갑자기 물러나기로 한 것도 내부의 ‘고인 물’로는 인텔이 당면한 도전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라고 언론은 분석했다.



 오텔리니는 전형적인 ‘인텔 맨’이다. 인텔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74년 입사 후 38년 동안 한 우물만 팠다. 2005년 CEO에 오른 뒤엔 인텔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맛봤다. 2005년엔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를 설득해 애플PC에 들어가는 컴퓨터 두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파워PC에서 인텔로 바꿔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인텔 매출은 2005~2011년 사이 57%가 늘었다. 매출 5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반면에 2006년엔 인텔 역사상 최대 구조조정을 단행한 ‘냉혈 외과의사’로 돌변하기도 했다. 한 해 1만 명의 노동자를 잘라내 2년 만에 3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그 덕에 2006년 곤두박질했던 인텔 주가는 급등했지만 구조조정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애플이 이끈 ‘모바일 혁명’이 PC시장을 잠식하면서 인텔 칩 수요도 꾸준히 줄었기 때문이다. 세계 PC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80%를 장악한 현실에 안주해 모바일 혁명의 파괴력을 얕잡아 본 게 실수였다.



 인텔이 방심한 사이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주로 만들어 온 영국 ARM이 모바일 시장의 신흥 강자로 등장했다.



모바일 시장에서 인텔의 시장점유율은 1%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여기다 PC시장을 평정하는 데 든든한 동맹군이 돼온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연대도 흔들리고 있다. PC시장 위축으로 제 코가 석 자가 된 MS가 모바일 시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팎의 도전에 실적도 갈수록 악화했다. 지난달 인텔은 3분기 순수익이 1년 전보다 14.3% 줄었다고 발표했다. 태블릿PC 기능의 진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PC 수요는 앞으로도 더 줄 수밖에 없다. 인텔로선 80년대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만들던 인텔은 일본 반도체회사들이 저가공세를 펴자 과감하게 메모리를 버리고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그 사이 회사의 덩치는 너무 커졌고 둔해졌다. 시장은 모바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지만 인텔의 조직문화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오텔리니 후임자가 외부에서 발탁될 것이란 월가의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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