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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한 빛 싫어 백열등 19개 … 불 켤 때마다 풍경 달라지는 밤의 집

중앙일보 2012.11.16 04:04 Week& 11면 지면보기
조각가 박상희씨의 집 2층 거실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흑백으로 만들어져 그 자체가 조각품 같다. 책장 위에 올려둔 사진 액자 속에선 20여 년의 가족사가 따사롭다.


청와대와 총리공관 사이에 팔판동이 있다. 경복궁으로 출근하던 조선의 여덟 판서들이 출근시간 단축을 위해 이 동네에 모여 살았던 모양이다. 이곳은 서울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옛 모습을 가장 오래 간직한 지역으로 조붓한 골목길 이름도 판서길이다. 청와대가 바로 곁이어서 드나들기 부담스럽고,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여 단점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차츰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곳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면서 이 동네의 장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자그만 뜰을 가진 골목 안 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느덧 팔판동은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선 문화거리로 변신했다. 2004년 프랑스에서 조각작업을 하며 귀국 준비를 하고 있던 박상희(57)씨. 그는 눈썰미 있는 친구에게서 경복궁 근처에 꽤 괜찮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친구의 안목을 믿었으니 보지도 않고 일단 계약부터 하라고 했다. 대지 106㎡(32평), 지은 지 20년이 넘은 낡은 벽돌집. 8년 전엔 지금과 달리 가격도 만만했다.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17) 조각가 박상희씨의 팔판동 집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팔판동 판서길 이 골목 안으로 달려왔다. 예상보다 훨씬 아름다운 동네였다. “뜰에서 동쪽인 가회동 쪽을 올려다보니 기와지붕이 섞인 옛 동네가 파리의 몽마르트와 흡사했어요.” 남으론 광화문과 남산이, 서엔 인왕산과 경복궁이, 북엔 청와대와 북악산이 빙 둘러쳐진 동네였다. 총리공관 키 큰 나무숲이 눈앞에서 일렁거려 종일 공원 안에 들어앉은 듯했다.



조각가 박상희씨
 박상희씨에게 이 집을 사라고 권한 이는 지난 회에 소개했던 티베트박물관 주인 신영수(58)씨다. 그는 될성부른 집과 동네를 짚어내는 눈이 있는 사람으로 권유한 김에 집 수리와 인테리어까지 맡아줬다. 당장 개조공사에 들어갔고 맨 처음 손댄 것이 담장과 대문을 허무는 일이었다. 골목 끝에 청와대를 지키는 경비가 진종일 서 있는데 굳이 대문을 걸어 잠글 필요가 뭣이랴. 담장을 없애니 골목이 당장 뜰로 편입됐다. 다음엔 마당을 뒤덮은 시멘트를 걷어냈다. 33㎡(10평) 미만 뜰인데도 일고여덟 트럭을 내다버려야 했다. 그 아래서 드러난 부드러운 흙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었다. 막무가내 심은 게 아니라 까다롭게 골라서 심었다.



 실은 3년 전에도 박상희씨 댁에 가본 적 있다. 돌거북 같은 석물들과 감나무 같은 식물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뜰은 그때보다 훨씬 운치가 실렸다. 그렇지만 가장 달라진 건 옥상 위에 새로운 뜰이 생긴 것이었다.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바닥 방수를 하고 붉은 벽돌을 쌓아 화단을 만들고 계단을 내고 수도와 싱크대를 들였다. “실제 평수는 66㎡(20평) 남짓이지만 체감하는 공간은 백 배 이상이죠. 여기서 보면 겸재의 인왕제색도가 그대로 나옵니다. 한옥의 정원구성 원리가 차경 아닙니까. 한양의 내사산과 이웃한 궁전의 뜰을 그대로 내 집에 끌어들인 거지요.” 99㎡(30평)에 불과한 집이 9917㎡(3000평)의 정원을 얻는 기적, 그게 바로 경복궁 인근에 사는 기쁨이리라. 옥상은 사방 숲으로 둘러싸인 박상희 전용 조각공원이 됐고 이곳에선 절로 숱한 파티들이 벌어진다.



 박상희씨는 특별한 성장기를 거쳐온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산 너머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무작정 집을 나가 떠돌았다. 물론 학교는 가지 않았다. 막노동도 하고 걸인들과도 어울려 다녔다. 남들 다 가는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채로 스무 살이 되었고 군대에 다녀왔다. “당시엔 말을 전혀 안 했어요. 말더듬이 심해서 입을 열지를 못했거든요.” 그러나 자신의 말더듬이 구강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가벼운 심인성일 뿐임을 깨닫고 1년 동안 신문 읽기를 반복하며 증세를 스스로 고친다. “그림이야 혼자 늘 그렸지요. 뒤늦게 그림 그리는 동네에 소속되고 싶어 제대 후 서울예고 시험을 봤죠.” 교사보다 나이 많은 학생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예고 입시에서 떨어지는 날 그는 ‘그럼 곧장 서울대로 가지 뭐’하고 대입검정시험을 봐서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한다.



 6년 전 그는 낡은 시계를 모아 붙여 심각한 얼굴 형상을 만들더니 올해 그는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부처 형상을 만들었다. 전혀 낯선 ‘피에타’였다. 종교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 나무에 부처 형상을 조각해 불로 태우기도 하고 거대한 권투글러브를 만들어 화랑 안에 굴려두기도 했다. “절에서든 교회에서든 손을 모으면 마음이 경건해지지요. 그러나 기도하던 손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면 인간은 초식성에서 육식성으로 바뀝니다.”



1 한밤의 옥상정원. 이곳은 곧잘 최상의 파티장이 된다. 2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쭉한 창으로 북촌의 기와지붕이 내다보인다. 3 담장을 헐고 개방형 대문을 달았더니 골목이 뜰로 편입됐다. 4 그의 조각작품과 오래된 수집품들.


 그에겐 수집벽이 있다. 무엇이든 모은다. 어쩌면 모은다는 행위 자체가 조각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모은 것을 적절히 잇고 늘어놓아 새로운 미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 무관심하게 버려진 물건들을 매서운 눈으로 포착해 전혀 다른 시공간을 확보해주는 것, 그게 조각 아니고 무엇이랴.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길 위에 나선 것은 그런 대상들을 자유롭게 만나기 위함인 듯도 하다.



 박상희씨 집만치 구경거리가 많은 집을 나는 전에 본 적이 없다. 달리 말하면 그는 집 자체를 조각으로 꾸며낸 사람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예사롭지 않고 2층 거실에서 옥상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듯한 반전과 파격이 있다. 좁은 공간을 이렇듯 다채롭게 변용하는 그의 솜씨에 새삼 찬탄하는 기분이다. 그의 집에 놓인 일상용품들은 대개가 백 년은 족히 묵은 것들이다. 그러면서 정갈하고 정교하다. “거의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벼룩시장을 돌며 사들인 것들이에요. 이사올 때 전부 싸들고 왔지요.” 벽에 걸린 그림들도 희한하게 내 발걸음을 그 앞에 붙들어 맨다. 거장의 화첩 속 명화에서 풍길 법한 기운이 있다. “이 그림은 벨기에 국경 부근에 있는 릴이라는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겁니다. 한때 프랑스 전역의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였거든요. 표면에 어두운 물감이 칠해져 있어서 일일이 닦아냈더니 속에서 저 그림이 나왔어요. 1874년이라는 연도 보이세요? 캔버스가 귀하던 시절엔 저렇게 덧칠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실제로 모네나 마티스 그림도 저런 식으로 발견되는 적이 있거든요.”



 이 집에 쓰인 조명기구는 아래·위층 합해 19개쯤 된다. 모조리 백열등이다. 형광등의 파리한 빛을 그는 질색한다. “형광등은 음식 빛과 사람 얼굴빛을 다 죽여버리고 공간을 평면으로 만들어요. 따뜻한 느낌의 백열등을 써야만 공간에 음영이 깃들지요.” 아래층은 부엌과 아이들 방이 있고 이층은 거실과 부부침실이다. 벽 모퉁이마다 심플하거나 섬세하거나 키가 작거나 크거나 재료가 나무거나 쇠인 조명등이 놓여있다. 그래서 이 집은 밤의 집이다. 등마다 불이 다 켜질 때 전혀 다른 풍경을 이루게 되나니 밤에 놀러오라고 그는 거듭 권했다.



 모양과 재질과 크기가 다른 테이블들도 구경거리다. 저마다 다른 표정과 언어를 가지고 있다. 거실 서랍장 위에는 동서와 고금을 아우른 조형물들이 모였고 서가 위엔 가지각색의 가족사진이 놓였다. 군에 간 아들과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딸과 KBS PD인 부인이 어울린 가족사가 한눈에 환히 보이는 사진들이다. 가족을 이루고 사는 지상의 삶이 낙원이고 축복임을 그 가족사진들이 웅변하고 있다. 이곳저곳 자신의 조각품이 놓였길래 가장 맘에 드는 작품 앞에 서보라고 권했더니 ‘희잡’이란 제목의 청동작품 앞에 선다. 천조각을 얼굴에 뒤집어쓴 여인이다. 이목구비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그 중동여인의 아름다움과 비애가 가만히 이쪽으로 전해져 온다.



 물건이 많아도 박상희씨 집은 전혀 어지럽지가 않다. 실내 정리의 비결을 묻자 즉답이 탁 튀어나온다. “같은 종류끼리 한곳에 모아두는 것, 종류든 형태든 빛깔이든 기준을 정해 모아두면 산만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없앨 것, 빛과 조명기구를 잘 활용하고 수납장을 많이 확보하는 것, 그 정도 원칙만 세워두면 되지 않을까요.”



 창가의 길쭉한 돌 구유엔 수생식물인 파피루스가 자라 마루 바닥위로 우아하게 흔들렸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지만 골치 아픈 청와대 주인이 되는 것보다 그 바로 곁에서 고구마나 구워가며 석양에 와인잔을 기울이는 조각가 박상희의 팔자가 훨씬 맘에 든다고 나는 거듭 고개를 주억거렸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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