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字, 세상을 말하다]山雨欲來風滿樓[산우욕래풍만루]

온라인 중앙일보 2012.11.12 10:57
세계제국 당(唐·618~907)의 번성기는 길지 않았다. 건국 72년 만에 측천무후가 주(周·690~705)를 세워 맥을 끊었고, 755년에는 안·사의 난이 터져 쇠락이 시작됐다. 나라를 사랑하는 시인들은 우울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높은 성루에 오르니 한없는 시름이 생기는데, 갈대와 버드나무가 물가에 길게 이어졌다(一上高城萬里愁, 楊柳似汀洲).

냇가에 안개 일자 해가 누각으로 뉘엿뉘엿 지는데,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네(溪雲初起日沈閣, 山雨欲來風滿樓).



옛 진나라 정원에 노을이 지니 새가 녹음에 깃들었고, 옛 한나라 궁궐에 가을이 오자 누런 낙엽 속에 매미가 울었다네(鳥下綠蕪秦苑夕, 蟬鳴黃葉漢宮秋).

행인은 왕년의 흥망성쇠를 묻지 않지만, 옛 도성의 동쪽에는 위수가 여전히 흐르고 있네(行人莫問當年事, 故國東來渭水流).”



당나라 후기의 시인 허혼(許渾·?~858)의 시 ‘함양성동루(咸陽城東樓)’다. 임박한 위기를 표현할 때 ‘일촉즉발(一觸卽發)’ ‘전재현상(箭在弦上)’ 대신 ‘산우욕래풍만루’라 읊으면 한층 표현이 깊어진다.



당 제국이 황혼기에 접어들자 역사를 들추고 옛일을 회고하는 영사회고시(詠史懷古詩)가 유행했다. 허혼은 영사시파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제후들의 발호와 환관의 전횡, 극심한 당쟁을 누각에 가득한 바람으로 표현했다. 만추(晩秋)의 장안성(長安城)에 깃든 석양은 진(秦)나라 함양성터의 잡초와 한(漢)나라 장락궁(長樂宮)터의 낙엽과 오버랩된다. 진·한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며 도도히 흘러 온 위수의 물줄기는 당나라 역시 앞선 제국과 운명이 같음을 예언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이 구절을 인용했다. 임진강가에서 황해도 수안군수 남속(南涑)과 피서를 나와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네(山雨欲來風滿樓), 이 구절을 훔치면서 염치도 잊었네(此句攘竊都忘廉)”라며 멋쩍게 임진란을 회상하는 시를 읊었다.



어려운 경제 환경이 바람 가득한 누각의 형세다. 동남 공단에 일감이 떨어졌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한·중·일 경제의 분업 구도가 깨지고 전면전(全面戰) 양상으로 바뀐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토 분쟁까지 겹쳐 있다. 동북아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