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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혈병 환자, 치료제 선택하게 해야”

중앙일보 2012.11.12 06:09 건강한 당신 6면 지면보기
백혈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동욱 교수.
“지난 7월 500페이지의 보고서와 혈액종양내과 교수 10명, 그리고 백혈병환자 500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냈다. 그런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5일 만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가톨릭 암연구소장) 교수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만성골수성백혈병(CML) 치료 전문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CML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주요 연구자로 참여했다. 수많은 CML 환자를 살린 그가 CML 환자를 구하기 위해 정부에 청원을 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백혈병은 혈액암이다.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병든 백혈구를 만드는 게 원인이다. CML은 백혈병 종류 중 하나다. 국내 백혈병 환자는 약 1만 명이다.



 김동욱 교수는 “백혈병은 진행 상태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나뉘는데 발병 비율은 약 8.5대1.5”라며 “하지만 유병(전체 환자) 비율은 6대4다. 만성백혈병의 치료 결과가 좋아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난치병이었던 CML의 생존율을 높인 1등 공신은 10년 전 출시된 표적항암제 글리벡이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적은 내성이 나타났다. 부종, 골다공증, 소아의 키 성장 억제 같은 부작용도 관찰됐다. 김 교수는 “피부와 혈관이 점차 얇아져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다 벗겨지고 눈의 혈관이 잘 터진다”고 말했다.



 최근 글리벡의 내성과 부작용을 개선한 2세대 치료제 세 가지가 개발됐다. 타시그나·스프라이셀·슈펙트다. 이 세 가지 치료제는 모두 치료 원리와 부작용에 차이가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2세대 치료제들은 약값도 글리벡보다 저렴해 환자 부담을 줄였다.



 김 교수는 “2세대 치료제는 글리벡보다 20~300배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인다”며 “글리벡을 복용하던 환자의 약 8%가 암 유전자가 완전히 사라져 약을 끊는데, 2세대 치료제를 사용하면 24%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교수에 따르면 건강보험 기준에 함정이 있어 2세대 치료제의 혜택을 누리는 데 제약이 있다. 김 교수는 “타시그나와 스프라이셀 중 한 가지로 치료를 시작했는데, 효과가 작거나 부작용이 있어도 다른 치료제로 바꾸기 힘들다. 그러면 보험 혜택이 사라져 환자가 모든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일부 환자에게서 폐에 물이 차는 부작용이 생겨도 약을 바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단 첫 번째 치료를 글리벡으로 시작한 환자 중 치료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심각한 환자는 2세대 치료제로 갈아탈 수 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마저도 1, 2, 3등급 부작용 중 일상생활의 50%가 불편한 장애수준인 3등급이 돼야만 약을 바꿀 수 있어 제한적”이라고 꼬집었다.



 CML은 만성에서 급성으로 넘어가면 생명이 위험하다. 김 교수는 “만성에서 급성으로 진행하는 비율은 1년에 2~3%로 이들은 6개월 만에 사망한다”며 “글리벡보다 저렴하고 효과 있는 2세대 치료제를 사용하면 1% 이하로 줄일 수 있는데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가 7월 정부에 낸 청원에는 CML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제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교차처방을 허용해 달라는 8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김 교수는 “환자도 살리고 건강보험 재정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정부의 기준이 못 따라가고 있다”며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헌법소원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달 중순 암질환심의위원회를 연다. 김 교수와 환자가 청원한 내용이 논의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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