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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후보 공약 뜯어보니 … 곳곳에 못 지킬 정책 재탕 삼탕

중앙일보 2012.11.12 02:04 종합 7면 지면보기
“국공립 보육시설을 30%로 늘리겠다”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인상하겠다” “직불금을 농가소득의 20%로 확대하겠다”.


대선 주자들 재원대책·실현성 없는 약속 남발
박근혜, 청년 해외취업은 MB가 원조
문재인, 농가 직불금 강화 10년 묵은 레퍼토리
안철수, 노령연금 인상도 노인표 겨냥 ‘재활용’

 대선을 앞두고 유력 주자들이 내놓은 민생공약이다. 그런데 이 공약의 원조는 따로 있다. 5년, 10년 전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노무현 당시 후보가 이미 국민에게 했던 공약들이다. 표 끌어모으는 데는 한몫했지만 실제 집권해선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18대 대선에서 후보들의 주요 공약으로 또 등장했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가 모두 약속했다. 이 공약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는 “우체통 있는 곳마다 공공보육시설을 세우겠다”며 국공립 보육시설을 30%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02년 6%이던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은 참여정부 말인 2007년 5.7%, 지난해엔 5.3%로 되레 줄었다.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 수도 2002년 12.9%에서 지난해 10.6%로 떨어졌다. 건축비 절반, 토지비용 전부를 부담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꼼짝하지 않아서다. 지자체로선 민간 어린이집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돈 쓸 이유가 없다. 최은영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5년간 30%로 늘린다는 목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건립비용 100%를 국고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 지켜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수표’가 되지 않으려면 예산지원 계획과 함께 민간 어린이집을 설득할 전략까지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기초노령연금 인상안’은 이명박 대통령 공약을 빼닮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한노인회 토론회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까지 드릴 수 있다”고 약속했다. 당시는 노인단체가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주장하자 모든 대선 후보가 앞다투어 공약을 내놓던 때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은 자연증가분만 반영해 8만4000원에서 9만4000원으로 인상됐을 뿐, 제자리걸음이다. 재원의 한계 때문이다. 그런데도 두 후보는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정작 5년 전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강하게 주장했던 대한노인회는 “연금 몇 푼보다 일자리가 중요하다”며 인상 주장을 접은 상황이다. 강세훈 대한노인회 행정부총장은 “대통령이 된들 입법 과정을 무시하고 퍼주기식 공약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며 “노인표를 의식한 선심”이라고 말했다.



 재탕뿐만이 아니다. 삼탕째인 공약도 있다. 농업 직불금 확대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불금을 농가소득의 20%로 늘리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농림예산 중 직불금 비중을 35%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직불금 비중은 농가소득의 5%, 농식품부 예산의 11%에 불과하다. 약속의 절반에도 못 미친 셈이다. 그러자 농민단체는 이번에도 “직불금 비중을 일본처럼 농업 예산의 40%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화답해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직불제 확대를 공약으로 채택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0%로 높인다’는 공약 역시 문재인 후보가 세 번째다. 앞서 노무현·이명박 두 대통령도 약속했다. 하지만 통계청 기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02~2011년 10년 동안 줄곧 49~50.3% 사이를 맴돌고 있다. 원경록 여성인력개발센터연합 국장은 “공약이 진전된 게 있기는커녕, 이전과 목표 숫자까지 똑같다니 너무하다”며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청년 해외취업 기회를 대폭 확대한다는 박근혜 후보 공약은 이 대통령의 ‘해외 취업 5만 명 확대’ 공약과 많이 닮았다. MB정부는 공약 이행을 위해 ‘글로벌 청년리더 양성사업’을 추진했지만 처음부터 목표치를 1만5000명으로 크게 줄여 잡았다. 지난 9월 국회예산정책처는 “취업상태가 단기간 유지되는 등 해외취업의 질적인 측면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내놨었다.



 안철수 후보가 재벌개혁 방안으로 내세운 ‘중요한 금융회사에 대한 계열분리 명령제’는 노 전 대통령이 공약했던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와 사실상 같다.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가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계열사에 연속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거나, 지나친 독과점으로 시장경쟁을 해친다고 판단될 때 공정위가 해당 금융회사의 계열분리를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였다. 이후 참여정부는 1년 넘는 기간 동안 외부용역과 내부 연구를 거쳤지만 사유재산권 침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계열분리청구제를 장기과제로 미뤘다. 결국 숱한 논란만 남긴 채 잊혀졌었다.



 같은 공약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매우 중요한 공약이거나 아니면 후보 측이 그만큼 준비가 안 돼 있어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할 말은 없는데 공약은 내놔야 하니까 과거에 나왔던 좋은 걸 또 들고 나오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유권자 역시 원인 제공자다. 유권자가 정책에 무관심하다 보니 대선 후보도 쉽게 공약을 만들고 재탕한다는 것이다. 홍인기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총선·지방선거에서도 유권자가 표를 행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못 지킬 게 뻔한 재탕·삼탕 공약을 내놓는 건 일종의 대 국민 사기”라며 “공약의 실행 계획까지 제시됐는지 따지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책임을 묻는 유권자와 언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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