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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영웅의 몰락 … 불륜 탓이냐 정치적 음모냐

중앙일보 2012.11.12 01:16 종합 20면 지면보기
2011년 6월 아프간에서 만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왼쪽)과 그의 전기를 저술한 브로드웰. 두 사람은 미 육사 선후배 사이다. [AP=연합뉴스]


“우리 모두는 실수를 저지른다. 중요한 건 그걸 인정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60)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자신이 세운 ‘12가지 삶의 원칙’ 가운데 바로 이 다섯 번째 조항을 어기고 스스로 무너졌다. 2010년 근무지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의 전기 『올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의 교육』 출간을 위해 만난 작가 폴라 브로드웰(40)과의 혼외정사가 들통나 CIA 수장직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방공로훈장·전시공로훈장·국무부 공로상 등을 받은 4성 장군으로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쟁을 지휘한 국민영웅이었다. 지난해에는 한·미 동맹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명박 대통령으로 부터 보국훈장의 최고 등급인 통일장을 받기도 했다.

퍼트레이어스 CIA 국장 전격 사퇴 … 20세 연하 자신의 전기 작가와 외도 시인
경쟁관계인 FBI의 음모설
4~5개월 전부터 조사 해놓고 대선 날 윗선에 보고해 터트려



 퍼트레이어스는 9일(현지시간) CIA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37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외도를 저지르면서 극도의 판단력 부족을 드러냈다”며 “이는 남편으로서는 물론 조직의 지도자로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폭스뉴스 등 외신은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6일 치러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지 사흘 만에 퍼트레이어스가 전격 사임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가 많다고 보도했다. 올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유력 거론된 그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다.



 CIA와 오랜 경쟁관계인 미 연방수사국(FBI)이 불륜 사실을 적발했다는 점도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에 따르면 FBI는 지난 4~5개월 동안 퍼트레이어스를 조사해 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전혀 보고하지 않고 있다가 대선 당일인 6일 오후 5시에야 CIA·FBI 등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 국장에게 보고했다.



 클래퍼 국장은 이를 백악관에 보고하며 퍼트레이어스에게 사퇴를 권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미국이 책임 있게 전쟁을 마무리하도록 돕고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 뛰어난 장군”으로 평가했지만 사퇴를 하루 만에 수용했다.



 FBI는 브로드웰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에게 위협적인 내용의 e-메일을 보냈고, 그 여성이 이를 신고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여성은 신고 당시 브로드웰과 퍼트레이어스 간의 사적인 e-메일을 함께 공개했다. 뉴욕타임스는 FBI 관계자를 인용해 “가족이나 정부 인사가 아닌 퍼트레이어스의 가까운 지인”이라며 “두 여인이 그의 애정 혹은 신임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FBI와 법 집행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우연히 퍼트레이어스의 이름이 발견됐을 뿐 절대 표적수사가 아니다”라며 정치적 목적을 부인했다. 이들은 CIA 국장의 허술한 e-메일 관리가 국가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e-메일을 수사한 결과 사무실 책상 밑에서 정사를 가지는 등 불륜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더 선은 퍼트레이어스가 CIA 국장이 된 뒤 브로드웰에게 차였으나 돌아와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보낸 e-메일 수천 통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인들은 혼외정사보다 비밀보호선서를 한 정보기관의 수장이 불륜녀에게 자신의 e-메일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대해 경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메일은 CIA 계정이 아닌 개인 e-메일을 통해 주고받은 것이었으나 더 많은 중요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미 언론들은 ‘미국을 배신하다’ ‘퍼트레이얼(퍼트레이어스+배신·betrayal)’ 등의 제목으로 충격을 표현했다.



민경원 기자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1974년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다. 졸업 당시 육사교장이었던 윌리엄 놀턴 장군의 딸과 결혼했다. 미 중부군 사령관을 지내며 이라크를 전면적 내전 위기에서 구해내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점령지를 탈환하는 등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37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9월 CIA 국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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