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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지도자의 자질

중앙일보 2012.11.12 00:42 종합 39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이 시대를 가리켜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말한다. 교육자들은 많지만 본받을 만한 스승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정중히 찾아가 무릎 꿇고 가르침을 청할 스승이 어찌 아주 없으랴만, 세속의 탁류(濁流)가 너무도 드센 탓인지 그분들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 여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드물고, 정치인은 많아도 믿음직한 정치지도자는 찾기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조건으로 역량(virtu)·운명(fortuna)·기회(occasione)·시대적 필연성(necessita)·상황 적응력(qualita dei tempi) 등을 제시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은 탁월한 통찰력일 것이다.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고 국가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능력은 지도자의 필수조건이다. 리더십을 비판받는 지도자가 있다면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자신의 식견과 통찰력부터 점검해볼 일이다.



 통찰력에 버금가는 것이 솔선수범하는 몸가짐이다. 평소의 주장과 실제의 생활이 딴판이라면 지도자로서는 자격미달이다. 부정부패 척결을 아무리 소리 높이 외쳐댄들 스스로가 비리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면 부정부패 척결 이전에 자신이 먼저 척결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가장 절실한 지도자의 자질을 하나만 들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신뢰의 인격’을 꼽겠다. 통찰력이나 솔선수범도 인격의 바탕 없이는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인격 없는 지식은 도리어 공동체에 해악이 될 수 있고, 인격 없는 선행은 남의 눈을 속이는 위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만델라를 이 시대의 위인으로 만든 것은 뛰어난 지식이 아니다. 목숨 걸고 백인정권에 저항한 투쟁도 아니다. 그 몹쓸 백인들을 향한 경이로운 포용력, 정의와 평화의 간극(間隙)을 뛰어넘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고뇌 어린 관용, 보복과 응징의 칼을 용서와 평화의 쟁기로 바꾼 통합의 리더십, 권력의지(Wille zur Macht)보다 더 강력한 사랑의 의지(Wille zur Liebe)…, 어둠 속 한 줄기 햇살 같은 이 고매한 인격이 만델라를 세계적 위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노벨 평화상이 만델라를 영예롭게 한 것이 아니다. 만델라로 인해 노벨상의 권위가 더 두터워졌을 따름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만델라처럼 신뢰할 만한 정치지도자를 바라고 있지만 신뢰는커녕 실망과 의혹투성이의 정치꾼들이 포장된 이미지의 환상으로 국민의 눈을 흐리고 있다. 듬직한 ‘인격’이 아니라 얄팍한 ‘인기’로, 투명한 삶의 역정(歷程)이 아니라 알쏭달쏭한 ‘구름 위의 산책’으로, 묵직한 정책이 아니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략적 이벤트로 표심 낚기에만 급급하다. 대통령 후보들이 쏟아내는 달콤한 선거공약도 과연 자신의 가슴으로 삭히고 익힌 신념의 정책인지는 알 길이 없다. 김일성 주체사상이란 것을 정작 김일성 자신은 뚜렷하게 알고 있지 못하더라는 것이 북한 민주화 운동가 김영환씨의 대면(對面) 증언이 아니던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조국 근대화 정신의 계승자, 민주화 운동의 후계자, 정보화 시대의 선구자가 맞붙었다. 그 어느 쪽도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아니다. 역사 발전에 꼭 필요한 과정들이다. 그 영욕(榮辱)의 자취들을 화해와 통합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을 창출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의 자질일 것이다. 국가관과 역사의식, 정책의 방향, 언행의 품격, 과거의 행적 등 여러 관점에서 후보들의 자질을 가늠해야겠지만 나는 다음의 물음에 보다 주목하고자 한다.



 자기의 소신과 정책으로 말하는가, 남을 반대하는 것으로 정책을 삼는가? 국민통합을 위해 헌신하는가, 분열과 편 가르기에 몰두하는가?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는가, 어제의 상처만을 들쑤시는가? 다음 세대를 위한 성장기반을 염려하는가, 당장 나눠 먹고 쓰는 일에 열중하는가? 유연하고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가, 도그마에 얽매인 이념의 노예인가? 문화와 인문을 아끼는 휴머니스트인가, 유행과 대중성에 민감한 포퓰리스트인가?



 그리고 또 하나, 영토분쟁과 민족대결의 위기로 치닫는 동북아의 긴장 속에서 무엇보다 절박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일 것이다. 평화통일을 향한 열정과 경륜을 품고 있는가, 불안한 소강(小康)의 남북공존에 집착하고 있는가? 북한의 처참한 민생과 인권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의 명분 아래 세습독재를 감싸기만 할 셈인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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