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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만의 여성 서울역장 “감성 터치로 역사 재창조”

중앙일보 2012.11.12 00:35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울역이 문을 연 지 112년 만에 첫 여성 역장이 된 김양숙씨. “단순히 기차를 타기 위한 역이 아닌, 쉼의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코레일]
112년 전인 1900년 7월 문을 연 서울역에 최초의 여성 역장이 탄생했다. 김양숙(44) 코레일 신임 서울역장(1급)이다.


9급서 출발한 김양숙씨
퓨전 국악 흐르는 쉼터로
깔끔한 일처리‘악바리’별명
전국 역 디자인 개선 맡기도

 서울역은 국내 철도역사의 상징이자 코레일 수입의 16%(연간 4800억원)를 차지하는 중요한 역이다. 하루 승객 30만 명이 이용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차역이기도 하다. 중요하지만 험한 자리라는 이유에서였을까. 어찌됐든 그동안 서울역장은 남성 직원들의 차지였다.



 김 신임 역장은 임명 소식이 전해진 11일 소감을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코레일 하면 서울역을 연상해 부담이 크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서울역이란 상징성에 맞게 시스템과 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도 접목해 고급스런 곳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87년 9급 공채로 철도청에 입사한 그는 25년 동안 서대전역장과 전략기획실 평가팀장, 문화홍보처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코레일 내에서는 적극적이고 깔끔한 일처리 덕에 ‘악바리’란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소개로 철도청과 첫 인연을 맺게됐다. 전남의 순천여고를 졸업하고 대입 재수를 하던 중에 아버지가 “많은 사람들이 철도청이 좋은 직장이라고 하는데, 시험 한 번 보라”고 권한 것이다.



 사실 입사 초기에는 조금 후회도 했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했으면 좀 더 재미있는 생활도 하고, 나중에 더 좋은 직장도 얻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아쉬움을 이내 떨쳐버리고 업무에 매진했다. 권성중 코레일 경영관리처장은 “김 역장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업무처리로 코레일 내에서는 아주 유명하다”며 “요즘 코레일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서울역 재창조 사업을 맡을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그의 ‘악바리’ 별명은 허명(虛名)이 아니다. 김 역장은 업무에 바쁜 와중에서도 어렵게 짬을 내 한남대 경영학과와 충남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코레일 문화홍보처에서 근무할 땐 전국 철도역의 디자인 개선 사업을 책임지기도 했다. 코레일 측이 김 역장의 서울역 재창조 사업에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 서울역장 발령을 받았을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나.



 “남편(공무원)에게 맨 먼저 알렸다. 남편이 좋아하면서도 ‘자주 못 보겠네’라고 하더라. 집이 대전인데 내 근무지가 서울이다 보니까 그렇다. 현재로선 서울 관사에서 생활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대전에 내려갈 생각이다. 중책을 맡은 만큼 서울역장에 충실하려고 한다.” 그는 되도록 가족 얘기 등 사생활보다는 일 얘기를 하자며 웃었다.



 - 서울역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은가.



 “편리하면서도 한국적 특색을 겸비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역사(驛舍)를 퓨전 국악이 흐르는, 휴식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열차를 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는 서울역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서 다시 찾고 싶은 서울역이 되게 하고 싶다는 얘기다. 고향을 향하든, 일터로 오든, 다 같은 여행 아닌가.” 김 역장은 서울역 디자인 개선 작업을 내년 초부터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때 서울역 광장도 문화적인 요소를 많이 갖춘 광장으로 새 옷을 입히고 싶다”고 말했다.



 - 코레일 생활 중에 가장 보람있던 일은.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전환하면서 2004년에 평가 팀장을 했다. 그때 공기업 평가체계를 만들었다. 평가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해서 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어려운 업무였지만 무척 가슴 뿌듯했던 기억이다.”



 -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가.



 “조직문화가 성과주의로 바뀌는 과정에 있어서 내부적인 공감대를 얻는데 힘들었다. 과정이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까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평가체계에 대해 반대는 없었다. 하지만 평가 지표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면서 맘고생을 했다.”



 - 최초 여성 서울역장이라는 작은 역사를 세웠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현재 서울역장이라는 큰 책임을 맡아 일단은 이 자리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 생활은 다소 단조롭고 건조했다. 직장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서울역장이라는 중책을 멋지게 수행하고 난 뒤에는 문화활동을 더 하고 싶다. 전시회나 공연을 더 많이 보고 싶다.”



  24세에 결혼한 김 역장은 1남1녀의 엄마다. 큰딸은 대학생이고 아들이 지난 8일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그는 “서울역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라며 “그래도 다들 흔쾌히 이해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웃었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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