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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서 예약까지 한 '1200원' 반값배추의 진실

중앙일보 2012.11.12 00:32 경제 4면 지면보기
대형마트들이 이른바 ‘반값 배추’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시장을 왜곡한다는 부정적 평가가 함께 나온다. 사진은 서울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왼쪽)과 응암동 이마트 은평점 배추 예약 판매대의 모습. [연합뉴스]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을 거쳐 반값 안경까지. ‘반값’이 유행이다. 지난주엔 ‘반값 배추’가 등장했다. 김장 배추값이 지난해보다 비쌀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어떤 물건이든 값이 싸면 소비자에겐 득이 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반값 배추는 반값이 아니다. 예약 할인 판매에 가깝다. ‘미끼 상품’이란 지적도 나온다. 일부가 배추를 싸게 사는 대신 전체 배추값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파격할인이 시장 가격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J Report] 줄서서 예약했는데 … 반값 배추는 반값이 아니다?
한 포기 1200원의 또 다른 진실



 이마트는 지난 7일부터 배추 40만 포기를 매장과 인터넷을 통해 판매했다. 예약 구매를 해뒀다가 26~30일 찾아가는 방식이다. 준비했던 40만 포기는 판매 사흘 만인 9일 동났다. 롯데마트도 8~10일 배추 20만 포기를 예약 판매했다. 두 업체의 판매 가격은 포기당 1200원이다. 업계는 1200원은 할인 판매를 발표한 6일을 기준으로 서울 가락시장 경매가(2570원)에 비해 53.3% 싸다고 주장했다. ‘반값 배추’가 되는 근거다.



 물론 1200원은 올해 김장철 배추 시세로는 매우 싼 가격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반값은 아니다. 우선 두 업체의 배추는 26~30일 소비자 손에 넘어간다. 따라서 가격 비교 기준은 6일이 아닌 26~30일이 돼야 한다. 이천일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정책관은 “올해 김장 배추는 태풍 등으로 파종 시기가 늦어졌다”며 “따라서 김장철 초반에는 배추 가격이 강세를 보이겠지만 이달 말부터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망대로면 포기당 1200원에 배추를 산 소비자가 물건을 받는 시점에선 할인율이 반값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비교 기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업계의 가격 비교 기준인 가락시장 경매가(6일 2570원)는 특상품 배추 거래가격이다. 특상품은 전체 배추의 5%에 불과하다.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상품의 가격은 같은 날 2063원이었다. 이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반값 배추’의 할인율은 11.5%포인트(53.3%→41.8%) 낮아진다.



 홈플러스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홈플러스는 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포기당 1650원에 배추를 판다. 예약이 아니라 바로 사 갈 수 있는 가격이다. 6일 기준으로는 평균 소매가보다 47% 싸지만, 이 역시 앞으로 가격이 내리면 할인 폭이 준다.



 물론 ‘반값 배추’의 긍정적 효과도 많다. 배추값이 웬만큼 떨어져도 예약 구매가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은 작다. 안 그래도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소비자에겐 도움이 된다. 수요를 분산시키는 역할도 한다. 김장을 11월 말로 늦춰 공급에 숨통을 틔운다.





 그러나 파격 할인가가 길게 봐서 소비자에게 이득인지는 논란거리다. 우선 반값 배추는 미끼다. 전체 배추 생산량의 0.5%에 불과하다. 소비자 모두가 두루 혜택을 보기는 어려운 양이다. 할인점들도 일부만 이 가격으로 공급한다. 이마트는 올해 김장철에 약 150만 포기를 팔 예정인데 할인 물량(40만 포기)은 판매 예정 물량의 27% 수준이다.



 올해 공급이 달리는 배추의 수급을 왜곡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마트가 할인 판매에 들어간 후 가락시장의 배추 경매가는 오히려 올랐다. 할인 판매가 발표된 6일 포기당 2063원(상품 기준)이었던 경매가는 10일 2602원까지 올랐다. 나흘 새 26% 상승이다. 대형마트가 할인 판매를 앞세우고 나서면서 중소형 마트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세했고, 자체 확보 물량이 없는 중소형 마트가 도매시장의 공급 부족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싸게 파는 걸 탓할 순 없지만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한 시점에 가수요를 유발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배추 가격 폭등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른바 ‘오세훈 배추’ 사태다. 2010년 9월 말 배추 가격이 급등하자 서울시는 10월 3일 가락시장에서 당시 오세훈 시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했다. 결과는 1000t을 시가 수매해 재래시장 등에 시중가보다 30% 싸게 파는 것이었다.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갑자기 대형 구매자(서울시)가 나타나자 가락시장의 경매가(4일)는 하루 새 54% 올랐다. 김병률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반값 배추가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지만 전체 가격을 왜곡시키는 부작용도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마트가 계약재배를 통해 싼값에 배추를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일반 소매 유통에서도 계약 재배가 활성화돼야만 과도한 반값 배추 경쟁이나 냉·온탕을 오가는 배추 가격의 변동성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매번 계약재배 확대를 외쳐왔지만 농협을 통해 하고 있는 계약재배 물량은 지난해 전체 생산량의 4.7%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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