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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쁜 남자’ 끄집어낼 사람 어디 없소

중앙선데이 2012.11.11 03:01 296호 6면 지면보기
‘영원한 윌리’, 배우 전무송(71)이 연기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한다. 연극인 가족으로 유명한 전무송 일가가 총출동한 작품 ‘보물’이다. 딸 전현아가 각본을 맡고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아들 전진우는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선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18일까지 계속된다.

연기 인생 50년 기념 연극하는 전무송

전무송은 1962년 현 서울예술대학교의 전신인 한국연극아카데미에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64년 동랑 레퍼토리 극단에 입단해 유치진의 ‘춘향전’의 이몽룡 역으로 프로 데뷔한 이래 올해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1978년 제1회 연극비평가상 연기상을 시작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86), 이해랑 연극상(2005), 동아연극상 연기상(2006) 등 무수한 수상 경력이 50년 연기인생을 대변한다.

“처음엔 허영이었지. 무슨 거창한 예술을 하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요즘 청소년들이 TV를 보고 막연히 꿈꾸는 것처럼 나도 그걸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어요.”

스승 동랑 유치진의 가르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겉멋으로 무대에 서던 그에게 황폐한 한국 연극계에 민들레 씨앗 같은 존재가 되라고 다그친 것.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되라고 하셨지. 왜 나한테 저러실까 고민하다 보니 나한테 그럴 만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정신을 차리게 되더군. 그걸 찾으라는 숙제를 주신 것 같아. 지금까지 그 숙제를 못 풀어서 딴 데 못 가고 연극판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전무송은 웬만한 현대 연극의 걸작들은 모두 섭렵했다. 미주, 유럽 순회공연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하멸태자’, 아비뇽연극제 무대에 섰던 ‘고도를 기다리며’,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 등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도 많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인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최다출연 기록을 갖고 있다. 올해에는 김명곤 연출이 각색한 ‘아버지’에 세 차례에 걸쳐 출연했다.

“연극, 예술을 떠나 윌리는 우리 아버지들의 살아 있는 모습 그 자체거든.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의무, 가족이 보는 아버지란 존재를 통틀어 윌리의 고뇌가 있는 거죠. 어느 순간엔 내가 바로 윌리가 되어 있을 만큼 심취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보물’은 그의 무대 인생 50주년에 대한 오마주지만 단순 일대기가 아닌 반전이 있는 창작극이다. 공연을 앞두고 쓰러진 대배우에게 벌어진 어느 하루의 일화에서 인생의 진정한 보물을 발견하는 작품.

“지금껏 무대에서 보였던 모습은 아닐 거예요. 평범하게 집에서, 제자들과 이야기할 때 드러나는 모습을 소재로 상상력을 동원한 무대죠. 주변에서는 그간의 대표작들로 50주년 무대를 꾸미라고들 했지만 난 그렇게 내놓을 만한 뭐가 없어 안 하려고 했어. 그런데 애들이 후배 입장에서 한 길을 50년 동안 가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며 만들어드리고 싶다더군. 아마추어적인 생각이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까짓 반백 년인데 이 시점에서 모든 걸 버리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초심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 싶었던 거지. 어설픈 무대라 예상하겠지만 진솔한 무대인 것은 분명해요. 누구보다 내 자신은 나와 내 가족이 제일 잘 아니까.”

50년을 무대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못해 본 역할이 있다.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양면성을 지닌 역할이 욕심이 난다고.

“분명히 나에게도 악의가 있을 텐데 아무도 안 꺼내준단 말이지. 예전에 딱 한 번 ‘킹 리어’의 에드먼드가 악역이었는데 그때 관객이 많이 안 왔어.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멋진 악역이 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앞으로 불러주길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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