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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광고도 ‘진정성’ 중시할 때

중앙일보 2012.11.06 00:50 경제 10면 지면보기
이현종
HS애드 CCO(광고제작 총괄)
지난 9월 말 본선 심사위원으로 모스크바 국제광고제에 참여했다. 수백 편의 러시아와 유럽 광고들을 접하면서 본 그들의 변화 양상은 생각보다 훨씬 다이내믹했다. 브릭스(BRICs)의 한 축인 러시아 경제의 성장을 바탕으로, 광고제로서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져 가고 있었다.



 지금 러시아의 광고들은 현지 시장에 서구 자본주의를 수혈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사회의 변혁을 주도하는 깃발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음주운전, 불법 택시, 인종차별에서 언론자유까지 날 선 주제들이 크리에이티브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번 광고제에서 공동 대상을 받은 인터넷 언론 매체 ‘URA.RU’의 캠페인은 그중에서도 인상적이다. ‘정치인들을 일하게 만들자’라는 이 캠페인은 러시아에서 넷째로 큰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집행됐다. 공약만 남발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끝내는 그들이 실천하게 만들었다는 데서 심사위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도로관리가 잘 안 돼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있어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정비를 약속하지만, 당선되면 역시나 모른 척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URA는 도로 바닥에 그림을 그려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즉, 도로의 파인 부분을 입 모양으로 해서 실제 주지사·시장·부시장들의 얼굴을 그렸다. 얼굴 밑에는 그들의 공약까지 써 놨다. 이 스토리가 전국 방송에까지 등장하면서 정치인들은 결국 도로 정비에 나섰다. 그야말로 아이디어의 승리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제니트 축구단의 광고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제니트팀은 관중 한 사람이 상대편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조롱을 한 것 때문에 구단이 곤경에 처했다. 이로 인한 이미지 추락을 막고자 러시아인이 사랑하는 대문호 푸시킨을 활용해 반(反)인종차별 캠페인을 폈다. 푸시킨도 사실은 아프리카인의 후예로 어두운 피부색을 가졌고, 인종을 떠나 같은 문화와 삶을 즐기자는 광고였다. 이 역시 기업 광고에도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좋은 광고는 첫째 매출을 올리거나,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둘째는 그 광고가 다른 광고에 영향을 줘 하나의 전형·장르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셋째는 사회의 변화에 영향력을 미치는 광고가 좋은 광고다. 기업들도 이런 점을 잘 인식해 마케팅 전략, 브랜드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도로 바닥까지 미디어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은 이제 수많은 채널을 통해 정보의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소비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업과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더 이상 대중은 ‘진실’과 ‘진실 같은 거짓말’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대중에게 진실 같은 거짓들을 여과할 훌륭한 필터를 선물했다. 진정성은 이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기업 하는 사람들에게, 또 커뮤니케이션을 다루고 광고를 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심히 곱씹어봐야 할 가치가 됐다.



이현종 HS애드 CCO(광고제작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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