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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드디어 막이 오른 대선 진검승부

중앙일보 2012.11.06 00:4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이하 경칭 생략)에게 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한 만남을 제안했다. “낡은 물줄기를 바꾸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문학적 표현도 곁들였다. 그제 “단일화 약속만 해 달라”는 문재인의 애걸에 호응한 것이다. 두 사람은 오늘 곧바로 회동할 모양이다. 안철수가 단일화 논의를 앞당긴 이유는 복합적으로 보인다. 백낙청을 비롯한 야권 원로들은 “이제 단일화 국면으로 넘어가야 한다. 일단 만나라”며 줄기차게 압박했다. 국회의원 100명 삭감 등 안철수의 아마추어적 발언도 역풍을 맞았다. 역시 결정적 배경은 지지율 추이였다. 계속 미적거리다간 피로감만 불러 지지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이다.



 단일화를 고리로 한 문재인의 공격은 파괴력이 굉장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호남 민심을 안철수 지지에서 자신 쪽으로 돌리는 강력한 무기였다. 지난달 말부터 호남 민심이 단일화에 적극적인 문재인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지지율 변화 폭은 미세했지만 변화의 추이는 유(有)의미했다”며 “단일화에 소극적일수록 불리한 구도”라고 입을 모았다. 보수표가 뭉치기 시작하는 데다 야권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면 안철수는 언제 주저앉을지 모를 살얼음판이었다. 안 캠프에는 “좀 더 일찍 과감한 정계개편과 신당 창당, 개헌론(대통령 임기 단축 등)으로 승부수를 띄웠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감돈다.



 문 캠프는 “안철수 기세가 한풀 꺾였다”며 표정관리가 한창이다. 하지만 안 캠프도 협상을 하면서 일단 시간을 벌게 됐다. 이제 양쪽은 외나무 다리에 마주 섰다. 단일화 파탄의 빌미를 제공하는 쪽이 몽땅 책임을 뒤집어쓰게 되는 구도다. 얼핏 문재인이 고지를 선점하는 듯 보이지만 안철수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 가장 유리한 시기에, 가장 유리한 단일화 조건을 들이밀 수 있게 됐다. “단일화를 하더라도 감동적이며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간단치 않다. 무시무시한 표현이다.



 단일화 쓰나미 속에서도 여전히 복병은 남아 있다. 요즘 안 캠프에는 40대 젊은 참모들의 발언권이 무척 세다. 이들은 “안철수가 세상을 바꾸려고 나왔지, 민주당에 표 모아주려 나왔나”는 말을 자주 한다. 서울시장 선거 때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안철수는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른 황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정권교체 만능론자들이 빠지는 함정도 간파해야 한다. 막판까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답답해지는 쪽이 어디일까. 호남을 중심으로 “어쩔 수 없다. 문재인이 양보하라”는 압력이 빗발쳐 막판 뒤집기가 가능한 시나리오도 가정해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지지율 20%를 넘나드는 후보들의 단일화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반(反)이승만 전선의 신익희와 조봉암도 신익희의 급서(急逝) 이후에야 단일화가 가능했다. YS-DJ의 단일화는 실패했으며 정주영(득표율 16%)과 박찬종(6.4%), 이인제(19.2%), 문국현(5%)도 마이웨이를 했다. 오히려 2002년 단일화가 희귀한 사례다. 여론조사에서 압승할 것이란 정몽준의 착각과, 단일화 없이 이길 수 없다는 노무현의 승부수가 어우러져 일어난 돌연변이였다. 그럼에도 이제 야권 후보단일화는 대세로 봐야 할 듯싶다.



 박근혜도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는 국면을 맞게 됐다. 그동안 새누리당 선대위는 “단일화와 양자대결은 상수(常數)로 봐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박근혜 측근들은 어디서 팩시밀리를 받았는지 “3자 구도로 갈 것”이란 근거 없는 낙관론에 젖어있었던 게 사실이다. 역사인식과 정수장학회 문제에서 거듭 헛발질한 것도 이런 판단 착오 때문이란 게 정설이다. 양자대결로 좁혀지면 박근혜는 승리를 장담하기 쉽지 않다. 안정감을 내세워 보수표를 묶으면서, 중도개혁으로 단일화로 이탈하는 표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그동안 하품 나게 하던 따분한 대선이 갑자기 흥미진진한 진검(眞劍)승부로 반전됐다. 토론회도 실종되고 마냥 ‘깜깜이 투표’로 갈 것 같았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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