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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여성 대통령 논쟁에 낄 자격조차 없는 저질 발언들

중앙일보 2012.11.06 00:38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휴일엔 집에서 몇 시간이고 느긋하게 뒹굴어대는 편이다. 자연스레 책보다 TV를 가까이 하게 된다. 요즘 채널 순례를 하다 정착하는 프로그램 중에 ‘여총리 비르기트’라는 정치 드라마가 있다. 원래 JTBC에서 지난해 12월~올해 2월 방영했던 덴마크 방송사(DR1)의 시리즈물이다. 제대로 챙겨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지난달부터 CNTV에서 더빙판으로 다시 방영 중이라 흥미 있게 보고 있다. 덴마크에선 시즌1이 53%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헬레 토르닝슈미트)가 탄생한 일이 드라마의 선풍적 인기에 보탬이 됐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총리 비르기트가 가장 힘을 쏟는 대목은 역시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남자든 여자든 정치인이라면 어디든 똑같을 것이다. 비르기트는 그러나 기업 이사회에 여성을 의무적으로 발탁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양성평등 정책도 강력히 추진한다. 덴마크 최대 대기업 총수가 단독 면담한 자리에서 “법안을 밀어붙이면 본사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최후통첩을 해도 굴하지 않고 버텨 결국 협조를 받아낸다. 인권에도 원칙을 지킨다. 외국 대통령이 덴마크 풍력발전 사업에 10억 유로를 투자하는 대가로 덴마크 내 자국 정치범을 송환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요령 있게 거절한다. 여성 총리의 ‘여성성’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곳은 역시 가정생활. 부부관계, 육아 문제 등에서 잇따라 어려움이 닥친다. 비르기트가 침실에서 남편과 나누는 대화가 상징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비르기트) “나도 사랑해. 하지만 총리에 대해서는 모르겠어.”(남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염두에 둔 ‘여성 대통령론’을 놓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박 후보의 보수 성향 때문에 진보를 자임하는 여성학자들은 선뜻 나서길 꺼리는 모양이다. 얼마나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냐로 평가해야지 후보가 여성이라는 점만 볼 게 아니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만일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박근혜의 아니무스(여성 속의 남성성), 안철수의 아니마(남성 속의 여성성)에 대한 풀이도 재미있다.



 문제는 코앞에 닥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에 휩쓸려 여성 대통령론이 대부분 정략을 깐 말싸움으로 진행되는 점이다.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논리가 달라지고, 똑같은 외국사례도 반대로 해석하는 판이다. 이 와중에 등장한 저열(低劣)한 언사들은 그나마 축에 낄 가치조차 없다. ‘생물학적’까지는 참아주겠지만 어떤 교수의 ‘생식기’ 발언은 듣는 이마저 낯뜨겁게 한다. 자기 어머니나 딸에게도 그런 말을 쓸 것인가. 이건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어생활 문제요, 발언자의 품격 문제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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