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사당패로 변신한 차승원, 도쿄 연극무대 오르다

중앙일보 2012.11.05 00:54 종합 22면 지면보기
3일 일본 도쿄에서 개막한 한·일 합작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 한 장면. 일제시대 조선 경성 부근의 한 마을에서 추석을 맞아 순우(차승원·왼쪽)와 학교 선생 야나기하라(구사나기 쓰요시)가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사진 우메다 예술극장]


차승원(42)이 연극에 출연한다. 배우 생활 15년만의 첫 무대다. 그것도 일본에서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 이후 상종가를 구가하고 있는 스타의 선택치곤 의외다.

재일교포 정의신 극본·연출 ‘나에게 불의 전차를’
구사나기·히로스에 등 톱스타와
일제시대 조선 무대로 연기 대결
직접 줄타기 “매일 꿈에 나올 정도”
제암리 학살 등 민감한 팩트도 다뤄



 상대 배우도 세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톱스타다. 우리에겐 ‘초난강’으로 잘 알려진, 일본 원조 아이돌 그룹 ‘스마프’의 구사나기 쓰요시(38)를 필두로, 일본 톱여배우 히로스에 료코(32), 연기파 가가와 데루유키(47) 등이다. 제목은 ‘나에게 불의 전차를’.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한·일 연극계를 평정한 재일교포 정의신(55)씨가 극본·연출을 맡았다. 화려한 라인업으로 포진한 연극이 도쿄에서 3일 개막했다.



 #외줄 타는 차승원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연기한 차승원.
 일본 도쿄 도심부에 위치한 아카사카 ACT씨어터. 3일 오전부터 북적였다.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한·일 양국의 톱스타가 연극에 출연하는 건 일본 언론에서도 화제였다. 4명의 주연 배우가 간단한 무대 인사 시간을 가졌다.



 축하 화환이 1·2층 로비를 가득 채웠다. 대부분 구사나기 쓰요시를 향했다. 공연 시작은 오후 6시30분. 개막 두시간 전부터 극장 주변을 팬들이 둘러싸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했다. 1500여 객석은 빈자리가 없었다.



 작품은 남사당패의 흥겨운 사물놀이로 열었다. 1924년 일제 시대 경성 외곽의 지방도시가 배경이다. 이곳으로 전근 온 일본 교사가 한국 남사당패와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이 큰 줄기다. 출연진은 모두 26명. 한국 배우는 한국어로, 일본 배우는 일본어로 연기했다. 구사나기는 일본어·한국어를 번갈아가며 했다.



 차승원은 분투했다. 남사당패 꼭두쇠를 연기했다. 연극 데뷔에 대해 그는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게 연기다. 그게 말라버린 것 같아 그 그릇을 채울뿐만 아니라 강하게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정의신 연출이라 더 믿음이 컸다”고 답했다. 하지만 첫 무대의 긴장감 탓인지 연기는 기대에 못 미쳤다. 장악력이 떨어졌다. 반면 구사나기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래도 2막 후반부 차승원이 외줄타기를 할 때는 찡했다. 객석에서도 박수가 터졌다. 줄타기를 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진심이 전달됐다. 차승원은 9월 하순부터 일본에 날아와 40여일간 연극에 몰두했다. 본인도 “매일밤 줄타기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정의신 연출자는 “차승원은 성실하고 영리하다. 무대에 곧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신의 뚝심



구사나기 쓰요시(왼쪽)와 히로스에 료코.
 존재감이 큰 건 가가와 데루유키였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독립군의 군자금을 대는 일본인 기요히코역을 소화했다. 그의 연기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러닝 타임은 무려 3시간40분. 그래도 모두들 기립박수를 보냈다.



 스타가 여럿이었지만 결국 남는 건 정의신표 연극이었다. 얽히고 설킨 가족 관계, 화해하기 힘든 근원적 대립, 가슴을 후벼파는 격렬함, 찡한 화해 등은 여전했다. 기요히코는 극중 이렇게 독백했다. “그날 헌병대 훈시가 있으니 교회로 오라고 했지. 불이 붙기 시작했어. 뒷문으로 나오자마자 총소리가 났어. 비명, 울부짖는 소리, 피가 나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어, ‘난 일본 사람입니다! 살려주세요’.”



 1919년 일본군이 무고한 주민을 대량 학살한 ‘수원 제암리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었다. 일본으로선 숨기고픈 불편한 진실일 터. 극우 세력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하지만 정씨는 “팩트(fact)에 입각해 대본을 썼다. 한·일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민족·정치·전쟁을 넘어선 인간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미묘한 시기에 이 연극이 일본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12월 1일까지 도쿄 공연을 한 뒤 오사카로 건너간다. 내년 1월말엔 서울에서 공연한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