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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영화인구 1억 시대의 그늘

중앙일보 2012.11.05 00:46 종합 38면 지면보기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1960년대 말 미국 디트로이트의 허름한 클럽 ‘하수구’. 훗날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을 키워낸 세계적인 프로듀서 마이크 시어도어가 한 뮤지션을 찾아간다. 한 구석에서 객석을 등진 채 노래하는 남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목소리였다. 외모는 부랑아 같았다.



 멕시코계 미국인 시스토 로드리게스는 그렇게 ‘콜드 팩트’(1970년) 등 두 장의 앨범을 냈다. 공장도시 디트로이트의 암울한 삶과 현실을 시적인 가사와 소울풀한 멜로디에 담았다. “크리스마스 2주 전 일자리를 잃고 시궁창의 예수에게 말했더니 교황은 그의 알 바 아니라고 하네”(‘cause’) 같은 노래였다. 시어도어는 “밥 딜런보다 훌륭하다”며 성공을 확신했지만 결과는 참패. 그는 그렇게 잊혀진 무명가수가 됐다.



 이런 그의 음악이 197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전해졌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권위주의적 통제 속에서 기성질서에 맞서는 가사가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다. 정부는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그의 음악이 저항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시위 현장마다 그의 노래가 울려퍼졌고, 수백만 장 음반이 팔려나갔다. 반면 그의 신상은 미스터리였다. 공연 중 관객 앞에서 자살했다는 루머만 무성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가 철폐된 90년대 어느 날, 로드리게스의 열혈팬 두 사람이 그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수퍼스타일 줄 알았는데 막상 미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전무했다. 가사를 단서로 추적했고, 인터넷에 광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다는 기적 같은 사실에 함성을 질렀다.



 마침내 98년 56세의 로드리게스는 남아공 팬들 앞에 섰다. “남아공에선 엘비스보다 당신이 더 유명하다”는 말을 믿지 못했지만, 수만 명의 관객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에 목이 메었다. 평생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 “나를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고 간신히 말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음악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말릴 벤젤룰 감독)에 담겼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선보여 심사위원특별상·관객상을 수상했다. 이후 작은 영화제들을 휩쓸었다. 국내에서도 개봉돼 관객을 1만 명가량 넘겼다.



 이후 로드리게스는 남아공에서 40여 차례 공연했다. 공연의 모든 수익을 이웃과 나누었고 여전히 디트로이트 집에서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의 노동자 친구는 “그의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는 현자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현실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며, 진정한 음악(가)의 길은 무엇인지 일깨우는 다큐멘터리다. 음악이 할 수 있는 기적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이 기적 같은 일을 공유할 극장이 서울에 달랑 8개. 그나마 퐁당퐁당 교차상영이라 영화보기가 기적처럼 힘들다. 일년에 1000만 영화 2편, 스크린 900개 이상 개봉작 6편, 한국 영화인구(한국 영화누적 총관객수) 1억 명 시대의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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