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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NLL 공방’ 이후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2.11.05 00:41 종합 39면 지면보기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이번 대선에는 과거에 볼 수 없는 색다른 양상이 있다. 여야 후보가 격렬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이슈들이 지지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의 설명이다.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사과 회견 땐 내용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우세했지만 지지율은 오히려 빠졌다. 정수장학회 회견 땐 공감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더 많았는데 지지율엔 변동이 없었다.” 또 과거사나 네거티브 공방은 팩트에 대한 추가적 확인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화되면 지지율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진위를 둘러싼 공방이 이를 반영한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있다고 새누리당이 밀어붙이니까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빠졌는데,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오히려 박 후보 지지율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후보 측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핵폭탄’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태세다. 이한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핵심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계속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부 보수 진영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반역’ 운운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 측과 진보 진영은 ‘전형적인 북풍 자작극으로 국기문란 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국익에 하나도 좋을 것은 없으나, 사안의 성격이나 이를 둘러싼 공방전이 이 지경에까지 온 이상 진위는 규명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두 후보가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게 있다. 박 후보는 집권 시 대북정책 기조와 이번 사태의 연관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미 천명한 기조를 집권 후에도 계속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모순에 직면하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박 후보가 강조했던 ‘안정적인 남북관계’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선 대화 국면이 요구된다. 물론 대화를 구걸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북한이 도발 등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면 단호히 대처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박 후보의 공약이 현실화되려면 대화의 ‘분위기 조성’만은 필요하다.



 가장 큰 장애는 NLL이다. 그러나 NLL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감안할 때 남북 간에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방치만 하면 긴장과 대결 국면이 순식간에 조성된다. 남북관계 전반을 아울러 북한을 협상의 장에 나오게 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이 수단이 될 수 있다. NLL만 다루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게 돼 있다.



 문 후보는 집권하면 첫해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에 대한 정밀한 복기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하는 것”, “NLL은 어렸을 때 땅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오만함으로 비춰졌다. 이번 사태의 원인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일부 국민들에게 “김정일 앞에서 NLL 포기 발언한 것 아냐’라는 인식을 심어준 측면이 있다. ‘지원을 해주면 남측 얘기를 들을 것’이라는 1차 방정식 같은 대북 인식에선 탈피할 필요가 있다. ‘남측이 주는 것 넙죽 받아먹다가 무슨 탈 나지…’ 하며 사주경계를 하는 게 북한이다. 정상회담 당시에는 공동어로구역에 대해 ‘등거리 등면적’ 원칙에 접근하는 척하다 한 달 뒤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서 NLL 이남 지역에만 설치하자고 한 것이 그런 예다.



 NLL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10·4선언을 통해 남측이 지원해 주는 것 고마운데 우리 사정이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암묵적 의사표시일 수 있다.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7년은 북한이 그동안 허용해 오던 분권이나 자율을 거두어들일 때여서 지원을 매개로 한 대대적인 남북교류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과 주변 4강 대부분에 새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내년도 한반도 정세는 매우 유동적이다. 이런 때일수록 당사자인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선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도 있고, 경색 국면에 빠질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모으느냐다.



 ‘노무현 발언’의 진위를 규명하는 작업은 대선 이후에도 계속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소모적인 정쟁(政爭) 상태로만 흘러간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후유증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여야는 정쟁을 중단하고, NLL을 비롯한 모든 대북 협상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협상력과 전략을 가다듬는 데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아무리 대선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남북 문제는 정권의 향방을 떠나 한민족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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