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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을수록 새롭다

중앙일보 2012.11.02 04:04 Week& 8면 지면보기
지춘희 Miss Gee Collection
‘대세’라 부를 만한 유행을 따르기 보다 각자의 감각을 살려 개성을 드러내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멋이다. week&이 패션 안목을 높여주고 감각을 길러줄 현장에 다녀왔다.


‘2012 추계 서울 패션 위크’에서 엿본 트렌드

지난달 22일부터 1주일 동안 서울 용산동 전쟁기념관 등에서 펼쳐진 국내 최대의 패션 축제 ‘2012 추계 서울 패션 위크’다. 공식 명칭엔 ‘추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론 내년 봄·여름 패션을 미리 보는 자리다. 무대에 작품을 올린 60여 명의 디자이너 가운데 주목할 만한 18인의 작품을 추려 분석했다.



여성을 더욱 여성 답게



‘올봄·여름엔 ○○이 유행’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한 만큼 디자이너들 역시 하나의 유행 코드를 좇지 않아서다. 그나마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기하학적인 무늬의 다양한 변주 정도. 대표적인 무늬인 격자 모양을 필두로 해 추상화를 옷이란 캔버스에 그려낸 디자이너도 있고 20~30대 대상 셔츠에도 공들여 구상한 패턴을 넣은 디자이너도 있었다. 표현은 다양했지만 모두가 ‘더 여성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표현 기법을 활용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부부 디자이너 정혁서·배승연은 정돈된 무늬를 반복해 그려 넣은 바지 차림에 군복을 연상케 하는 단순한 외투를 섞어 내놨다. 받쳐 입은 것은 여성적으로, 외투는 다소 남성적으로 표현했다.



여성적인 분위기를 더욱 여성적으로 풀어내는 디자이너 지춘희는 ‘소녀적 감성’과 ‘숙녀의 세련미’를 조화시켰다. 잔잔한 무늬가 반복된 붉은색 치마 정장. 군더더기 없이 재단한 재킷과 무릎 위 길이의 치마에 술 장식을 달아 여성미를 강조했다. 재킷 소매도 짧게 처리해 여성의 가느다란 손목이 드러나도록 했다.



1 정혁서·배승연 Steve J & Yoni P 2 이상봉 Liesangbong 3 이석태 KAAL E. SUKTAE 4 박윤수 BI G PARK 5 최지형 JOHNNY HATES JAZZ 6 박항치 BAKANGCHI


이상봉이 표현한 재킷과 바지는 현대적인 도시 여성의 패션 감각을 강조한 듯 보였다. 굵은 체크 무늬는 강렬한 빨강으로 표현됐고 재킷 끝자락에 달린 ‘페플럼’(블라우스나 재킷 아랫부분에 달아 옆으로 살짝 퍼지게 만든 짧은 치마 모양 장식)이 여성스러웠다. 오은환은 여성적인 페플럼을 조금 더 변용했다. 종이 접기를 응용한 듯 선 굵은 주름보다 각진 형태로 다듬어 원피스를 만들었다.



디자이너 박윤수도 기하학적 무늬의 향연에 동참했지만 방향은 조금 달랐다. 여성적인 무늬가 장식 요소로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바탕에만 무늬를 쓰고 셔츠 부분에 민무늬 데님색 천을 군데군데 섞어 넣어 정돈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여성적인 분위기는 거리 패션에 어울릴 법한 모자와 운동화 덕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7 오은환 Kumann OH EUN HWAN 8 송혜명 Dominic’s Way 9 강기옥 kiok 10 강동준 D. GNAK by KANG. D 11 계한희 KYE 12 고태용 beyond closet


계한희는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을 적절히 섞는 방법을 고안했다. 검정으로 새긴 무늬는 복잡했지만 흰 바탕에서 포인트 요소로만 쓰였을 뿐 어지럽게 표현되지 않았다. 스타킹에도 같은 무늬를 넣고, 이를 깔끔하게 정돈했다. 전체적으로 닮은 듯 다른 무늬가 겹치면서 하나의 추상화 형태를 유지해 세련된 멋이 난다.



박항치는 한쪽 어깨에서 시작한 굵은 주름이 다른쪽 발목까지 이어지도록 디자인한 드레스로 여성미를 강조했고 이도이는 흰 자수 장식이 가득한 드레스로 같은 목적을 달성했다. 곽현주는 드레스에 그림을 그린 듯한 한 벌의 프린트를 집어넣었는데, 디자이너 이석태 역시 상의 부분에 무늬가 아니라 작품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한편 강기옥은 90년대 유행했던 ‘청청패션’을 새롭게 해석해 내놨다. 상의에 두 가지, 하의에 한 가지, 모두 세 가지의 데님 색상을 달리해 가며 넉넉한 바지 정장으로 새로운 여성성을 표현했다. 또 최지형은 어깨를 드러낸 여성적 투피스에 비닐 소재의 스포츠 재킷을 덧입혀 재미있는 의상을 완성했다.





한결 부드러워진 남성복



13 이도이 Doii 14 이승희 LEYII 15 곽현주 KWAK HYUN JOO collection 16 장광효 CARUSO 17 김서룡 kimseoryong homme


격식을 갖춘 슈트보다 자유복을 입는 남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남성복 컬렉션에서 정통 정장 형태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장광효는 기성 정장 재킷에서 벗어나 하늘색으로 재킷을 꾸미고 여기에 깃 없는 셔츠를 조화시키면서 허벅지를 살짝 덮는 길이의 셔츠도 밖으로 빼서 입도록 했다. 격식 파괴로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남성복이었다. 김서룡은 깔끔한 검정 정장에 한 폭의 그림을 제대로 그려 넣었다. 무늬만 걷어내면 절제된 슈트지만 김서룡의 그림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게 했다. 강동준은 다소 품이 넉넉한 재킷에 더 넉넉한 반바지를 입혀 자유로운 남성복 대열에 동참했다. 남성 슈트 차림에서 반바지 정도는 이제 더 새롭지도 않을 정도라 반바지 자체를 어떤 실루엣으로 만들 것이냐를 고민한 흔적이 돋보였다.



송혜명은 거리의 전사 분위기에 거리 벽화 같은 무늬로 재킷을 디자인 했고, 고태용은 아웃도어 의류의 감성을 빌려와 캐주얼 의류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편안해진 남성복은 이승희에게서도 엿보였다. 무늬를 배제한 이승희는 흰색 긴 재킷과 흰색 9부 바지, 약간 속이 비치는 흰색 셔츠로 깔끔해진 여름 남자를 무대 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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