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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엄마가 뭐길래’ 나문희

중앙일보 2012.11.02 00:48 종합 22면 지면보기
나문희
‘엄마를 부르기만 해도 살 것 같다’고, 『엄마』라는 시집에서 이해인 수녀는 썼다. 엄마. 부르기만 해도 목이 메어오는 이름. 그렇게 제 어미를 부르는 새끼들의 소리를 모아 하나의 살갗으로 빚어낸다면 아마도 배우 나문희(71)의 모습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내 어미를 보듯 ‘엄마’라 부르고 싶은.


억척 사채업자 뒤엔, 한 없이 넉넉한 모성

 평범한 외모 때문에 젊은 시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성우 출신의 배우는, 평생 꽃만 그리는 화가처럼 엄마를 연기해왔다. ‘나의 어머니(1990)’ ‘내 이름은 김삼순(2005)’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빠담빠담(2012)’ 등 숱한 드라마에서부터 연극 ‘친정엄마’까지. 돈 많은 사모님이든 지지리 복도 없이 평생 가난하게 산 여인이든 그는 늘 누군가의 엄마였다. 그리고 2012년 가을, 엄마 그 자신이 주인공인 MBC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에 착륙했다.



 시트콤 속 나 여사는 빌붙어 사는 자식들에게 꼬박꼬박 돈을 받아내고, 화장실이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아들과 사위에게 앉아서 소변을 보라 지시하는 엄마다. 낭비다 싶으면 “무슨 나라님 수라상이야? 반찬이 왜 이렇게 많으냐” 타박 놓기도 서슴지 않는다. 일수가방을 들고 집을 나설 땐 영락없이 사채업자다. 남편을 잃은 뒤 자식을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억척스레 살아온 탓이다.



 그러나 그 냉정하고 엄격한 모습에는 어떻게든 자식을 공부시키려 했던 굳센 어미,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친딸로 품어낸 어미,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 어미의 모습이 포개져 있다. 그가 연기해 온 수많은 엄마들 중 고갱이만 뽑아 응축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특히 손녀에게 업둥이 딸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그때부터 지혜고모는 할미 딸이 된 거야. 큰고모나 작은고모나 다 할미 딸인 거야”라 말해주는 장면은 그런 모습의 절정이다.



 그래서 나 여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모성은 강요될 수 없고 타고난 것도 아니지만, 내 새끼를 낳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도 줄 수 있는 거라고. “푹 삶아지는 게 삶의 전부일지라도 (…) 가장 가난한 입천장을 향해 후룩후룩 날아올라야 한다”는 시(이정록 ‘국수’)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극중 나 여사, 국숫집 사장이다. 후룩후룩 가난하고 추운 입천장을 향해 날아오르는 국수처럼 힘차고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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