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이올린이 없어 빌려쓴다 세계가 그 실력 알아봤다

중앙일보 2012.11.02 00:47 종합 22면 지면보기
20대 중반에 빛을 보기 시작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그의 왼쪽 턱 밑엔 검은 색 멍자국이 있다. 그는 “바이올린 소리가 객석에 크게 들리도록 연습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일 출신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60)의 2007년 작품 ‘세상 끝과의 조우’는 남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중반 수천 마리의 펭귄 무리가 등장하고, 그 중 바닷가가 아닌 남극점으로 걸어가는 펭귄 한 마리가 클로즈업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24)를 만나고 나서 남극점으로 걸어가던 그 펭귄이 생각났다. 뭔가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는 의미에서다.


하노버콩쿠르 1위 김다미
집안 어려워지며 악기 팔아
10대 때 콩쿠르보다 연습 집중

 김씨의 시작은 여느 음악영재와 비슷했다. 5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잡았다. 예원학교에 다니다 14살에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이 콩쿠르를 준비하며 해외를 돌아다니는 동안 음악에만 집중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뒤늦게 국제콩쿠르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만인 올해 10월 하노버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알렉산드라 코누노바-두모르티에와 공동 1위에 올랐다. 늦었지만 값진 영광이었다.



 - 나이 제한 때문에 보통 10대부터 콩쿠르에 나간다.



 “197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미리암 프리드에게 배웠다. 선생님은 매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것이 행복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콩쿠르에 도전했을 거다.”



 - 하노버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이 ‘연주에 욕심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올 5월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준비했다. 대회 한 달을 남겨놓고 사무국에서 연주 시간이 너무 길다며 곡의 교체를 요구했다. 결국 파가니니 협주곡으로 바꿨는데 그만둘까 하다가 나이가 있으니 포기할 수도 없고 해서 끝까지 연주했다. 하노버에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연주했다. (※김씨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에 올랐으나 순위권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김씨는 2010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악기점에서 3주간 빌린 바이올린으로 올린 쾌거였다. 가지고 있던 바이올린은 10년 전 팔아야만 했다. 9·11 테러로 쌍둥이 빌딩에 입주해 있던 아버지 회사의 거래처가 문을 닫으면서 아버지가 차린 회사도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커티스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선 학교 바이올린을 빌려서 연습했고 콩쿠르 때는 바이올린을 대여했다. 이번 하노버 콩쿠르에선 2010년 나고야 무네츠구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2년간 임대받은 169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했다.



 - 빌린 악기가 손에 맞았나.



 “파가니니 콩쿠르 때는 대여 기간이 딱 3주였다. 악기는 오래 연주해야 손에 들어온다. 3주 이상은 빌릴 수 없어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연습했다.”



 김씨는 지난 3년 간 참여한 콩쿠르에선 선택곡으론 매번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골랐다. 베토벤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D장조 하나만 남겼는데 많이 연주되는 곡이라 심사위원들의 기대치가 매우 높아 콩쿠르 참가자들이 피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 하필 왜 베토벤이었나.



 “베토벤 협주곡은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다. 하지만 도전정신이 들어 있다. 곡 자체가 완벽한 곡이라 연주도 완벽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 베토벤을 연주하면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파이팅 정신이 생긴다. 베토벤 곡으로 우승을 했어도 내 연주가 완벽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김씨는 내년 1월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열고 KBS교향악단·광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할 예정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