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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배은망덕한 국민들

중앙일보 2012.11.02 00:42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이렇게 전·현직 대통령 자녀들을 모두 검찰 혹은 특검 포토라인에 세운 나라가 또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의 특검 조사로 우리나라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 자녀가 수사선상에 올랐다. 모두 11명이다. 이 중 5명이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다. 시형씨를 제외하곤 대부분 돈과 관련된 비위 혐의였다. 시형씨는 변칙상속의 꼼수가 의심되는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다투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지금 가장 분한 사람은 이 대통령일 것이다. 사실 그는 ‘일하는 정부’라는 슬로건 아래 오전 8시에 국무회의를 하고, 매일 네댓 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해 왔다. 각 부처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챙겼고 ‘보고서에 있는 통계수치까지 외울 정도’라는 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겨우 이거냐’며 통탄할 만하다.



 억울한 건 또 있다. 그의 도덕 수준과 꼼수를 국민이 모르지 않았다. 이미 대선 후보 시절 자신의 건물관리회사에 자녀들을 직원으로 등재해 월급을 타도록 위장취업 시킨 사실이 알려졌고, 위장전입도 했으며, 2만원도 안 되는 건강보험료로 구설에 올랐고, 선거법을 위반해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으며, 도곡동 땅 의혹에 BBK 의혹까지 터졌다. 공인의식·도덕성의 부재와 꼼수는 진작부터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것도 무려 531만여 표 차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말이다.



 이번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논란은 그의 행적으로 볼 때 놀라운 일도 아니다. 특검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변칙상속 혐의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상속세 절세 등 경제적 효율이 높은 쪽으로 움직인 건 그다운 일이다. 바로 이런 점, 경제적 효율을 최고로 치는 ‘CEO형 지도자’라는 이유로 국민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를 뽑았다.



 그리고 대통령은 5년 동안 변치 않고 그의 방식대로 살았다. 청계천의 성공신화를 4대 강으로 펼쳤고,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이며 고달프게 일했다. 4대 강, 자원외교,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등 최고경영자(CEO)였다면 자랑할 만한 치적도 꽤 된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국민은 들어보려고도 않고 손가락질하며 넌덜머리를 낸다. 또 예전엔 개의치 않던 도덕성을 꺼내 들고 아들도 벌을 줘야 한다며 특검에 끌어내니…. 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배은망덕한 국민인가.



 하나 배은망덕한 국민도 이런 상황이 통쾌하진 않다. 오히려 항변하고 싶은 게 태산 같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매년 7% 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 실현이라는 ‘747공약’을 내놓았다. 한 사람 한 사람 부자로 만드는 데 전력하고, 정당하게 땀 흘렸을 때 부자가 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우린 이 비전에 홀려 그의 도덕적 결함에 눈을 감아 줬다. 그런데 공약의 알맹이는 놔두고, 변죽만 울려 놓고 치적이라니.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매번 배은망덕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대통령은 없다. 믿은 사람이 바보다.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됐을까. 또 변명하자면, 우리에겐 대안이 없었다. 기존 정치권은 부패와 뻔뻔함을 부끄러워할 줄 몰랐고, 권력욕에 눈을 희번덕거릴 뿐 국민과 국가를 위해 진정 고뇌한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민은 참신한 노무현, 기업가 출신 이명박 등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 정신없이 좌향좌 우향우 하며 헤맸다. 그러나 우리에겐 실망과 배은망덕의 죄만 남았다.



 다시 대선철이다. 세 후보가 각자 메시아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한데 그들 모두 비전은 흐리멍덩하고, 국민이 놀아도 먹여 주는 지상낙원을 만들 것처럼 ‘뻥’친다. 정치적 논의 수준은 나날이 바닥을 파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상대 진영 잘못을 들춰내 물고 늘어지는 일에는 날카롭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5년 후 다시 배은망덕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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