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치매 아내 목조른 70대 “같이 가자, 사랑하니까”

중앙일보 2012.10.31 01:35 종합 10면 지면보기
백년해로를 꿈꾸던 70대 부부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다. 금실을 끊은 것은 치매였다. 78세 남편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2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하지만 수발의 고통은 너무 컸다. 견디지 못한 남편은 아내의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느 노부부의 비극
몸은 멀쩡한 아내, 요양치료 거부
“돌보기 힘들어 견딜 수 없었다”

 사건은 19일 오후 9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치매를 앓던 조모(74) 할머니가 남편 이모(78)씨에게 “바람피운 거 다 알고 있다” “넌 부모 없이 자란…” 등의 폭언을 쏟아냈다. 베개, TV 리모컨, 옷걸이 등으로 남편을 때렸다. 조씨는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런 말을 하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날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아내의 목을 조르고 말았다. 이씨는 아내의 귓가에 “여보 같이 가자,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함께 살던 둘째아들(45) 부부와 손자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 이씨는 범행 직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희 어머니를 죽였다”고 말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이씨는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또 “아내를 돌보기가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이씨의 아들은 경찰에서 “2년 전부터 어머니한테 치매 증상이 나타났는데 최근 더 심해졌다”며 “아버지는 어머니와 늘 같이 있으면서 산책을 시키고 밥도 손수 먹이는 등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부인을 목 졸라 죽인 혐의(살인)로 이씨를 구속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고 30일 밝혔다. 이씨는 유수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 임원을 지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 부부의 비극은 치매 가족이 겪는 수발의 고통을 보여 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 노인 40%는 배우자가 돌본다. 치매 환자의 60%가 여성이어서 남편이 책임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고통을 사회가 분담하려고 만든 제도가 노인장기요양보험(치매수발보험)이다. 하지만 조 할머니는 도움을 원하지 않았다. 조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거부해 강제로 신청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씨의 이웃 주민은 “할아버지가 바람 쐬러 나오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며 “한번은 ‘할아버지 안 힘드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더 성성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웃은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할아버지 혼자 얼마나 힘들었겠나. 고생만 하다가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시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상당수 치매 환자는 조씨처럼 남의 도움을 거부한다. 그러면 방치되고 증세가 악화된다. 서울 강동구는 의사·간호사 등으로 이뤄진 전문팀이 경로당 등에서 환자를 먼저 찾아낸다. 조기 발견이 중요해서다. 그래야 환자에게 맞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장기요양보험 대상이 되면 서비스를 연결하거나 주간보호센터에 잠깐 맡길 수도 있다. 이래야 증세 악화를 막고 무엇보다 가족들의 고통을 덜 수 있다.



 서울 강동구치매지원센터 한경혜 팀장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배우자에게 치매 상식과 스트레스 관리법 등을 가르치고 건강검진과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이렇게 해야 수발자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는 가족들이 24시간 전화 상담을 할 수 있는 ‘치매 문제 행동 조언’ 서비스를 운영한다. 스웨덴은 치매환자등록시스템을 가동해 처음 진단받은 환자는 해마다 추적 관찰한다.



 한국은 2008년 장기요양보험을 시행했지만 혜택을 받는 이들이 치매 환자 53만 명 중 중증 15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38만 명은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 7월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는 치매 환자를 늘리고 가족용 통합상담 콜센터를 운영한다고 발표했지만 가족 프로그램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