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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가족의 역사’ 과제 하다보면 단절된 세대 저절로 이어져

중앙일보 2012.10.30 04:11 11면
대학에서 한국역사를 가르치면서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까 궁리한 적이 있다. 마음에 변화가 오는 공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왔다. 그중 가장 효과 있는 것이 가족의 역사를 조사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대학생들은 “초등학생이 아닌데요?” 하며 당혹해 한다. 다음의 조건에 더욱 황당해한다. “분량은 A4 용지 5매” 그리고 “반드시 끝에는 이 조사를 하고 난 느낌을 적을 것!” 구술채록의 요령을 가르친 후 칠판에 다음 말을 쓰고 몇 번 크게 읽게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들려 줄 이야기가 있다. 들어줄 귀만 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한 학생의 소감문을 소개한다.



“처음엔 막막해 아버지에게 느닷없이 아버지의 인생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무슨 인생이냐고 반문하셨지만 꼭 필요하다는 나의 요청에 못 이겨 천천히 기억을 꺼내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낯간지러워 하시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웃기는 이야기만 줄곧 하셨으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온 가족이 아버지 주변에 모여 들었고, 아버지와 배 아프게 웃으며 처음으로 이렇게 이야기한 것 같아 행복했다. 어른이셨기 때문에 항상 의젓할 것만 같았던 아버지가 어린 아이였을 때는 내 모습과 다를 게 없는 풋풋하고, 더 말썽쟁이였던 아버지의 유년시절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늦게 들어오시고 피곤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아버지의 환한 미소와 가족들의 미소를 보았을 때 이런 모습이 가족이구나 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으며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아버지,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인 제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수년간의 이런 경험을 통해 대부분 학생들이 과제를 시작할 때의 마지못한 감정을 곧 벗어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역사 과제가 다음과 같은 교육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첫째, 사춘기 이후 거의 친밀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부모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준다. 둘째, 자료를 조사하고, 대화하고, 인터뷰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경험을 한다. 셋째, 성숙한 인간으로 철이 들게 해 부모님, 조부모님을 사랑하게 된다. 단절된 세대를 서로 잇게 한다.



한 학생은 이 과제를 하고 난 후 이렇게 마무리했다. “스무살, 내 인생을 동여맬 끈을 찾았다.” 또다른 학생은 졸업 후 이런 편지를 보내 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수업 과제로 할머니 이야기를 리포트에 담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그런 학생들의 변화를 보면서 감사한다. 가족 역사는 매우 효과 있는 역사교육이자 인간교육임을 매번 확인한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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