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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펀드 수수료 가벼워진다

중앙일보 2012.10.30 00:38 경제 4면 지면보기


신영자산운용이 판매수수료를 나중에 떼는 후취형 펀드를 다음 달 내놓는다. 후취형 펀드 출시는 전 운용업계를 통틀어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후취형 펀드는 대략 2년 이상 장기투자할 경우 투자금액 기준으로 1% 안팎의 판매수수료를 전혀 떼지 않는다. 펀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년 이상만 투자해도 판매수수료를 절반가량 깎아준다. 판매사보다 투자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하지만 그동안 판매사의 외면으로 후취형 펀드에 가입하기 쉽지 않았다. 파는 곳이 드물다는 얘기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9일 현재 투자자 돈이 1억원 이상 들어가 있는 국내 후취형 펀드는 모두 25개로, 전체 설정액은 2852억원에 불과하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국내 펀드 시장이 점점 장기투자에 유리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장기투자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후취형 펀드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증시 침체에 … 투자자, 보수·수수료에 민감해져
빼고 없애고 … 신영자산 후취형 펀드, 수수료 없어
내려앉아라 … 자문형랩과 ETF, 보수 최소화 바람



 허 본부장은 “고객을 위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운용업계에서는 “신영운용의 후취형 펀드 출시가 운용업계의 펀드 수수료 인하 전쟁의 신호탄이 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후취형 펀드가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펀드 수수료가 내려가는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똑같은 삼성아세안증권자투자신탁에 1000만원을 가입해 3년간 투자한다면 판매수수료를 미리 떼는 선취형인 A클래스로 가입했을 땐 39만4000원, 판매수수료 없이 매년 판매보수만 떼는 B클래스로 들면 42만원의 비용이 든다. 반면 후취형인 B클래스로 투자할 경우 22만5000원만 내면 된다. 들어가는 비용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수익률이 높을 땐 대다수 투자자가 이 정도 비용 차이에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수익률 1%가 아쉬운 요즘 같은 시기엔 투자금을 옮길 만한 동인이 될 수도 있다.



 국내 운용업계의 수수료 전쟁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촉발됐다.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자산운용에 맞서기 위해 후발주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4월 코스피 200 지수를 추종하는 ETF 보수를 0.34%에서 0.15%로 낮추자 1년 만에 4000억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한국투신운용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 9월 8개의 ETF 보수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확 깎은 것이다. 할 수 없이 삼성자산운용도 올 6월 ETF 2개 수수료를 낮췄다.



 한국투신운용 관계자는 “증시 하락세 탓에 펀드 수익률이 꺾이면서 투자자가 금융상품에 지불하는 각종 보수·수수료에 민감해졌다”며 “비교적 싼 비용으로 운용되는 ETF조차 최소한의 보수만 받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다른 액티브 펀드도 수수료 인하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운용업계는 액티브 펀드의 수수료 인하 압력이 후취형 펀드에서부터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4월 삼성증권이 후취형 펀드 13종을 판매했으나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후취형 펀드의 파괴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전히 펀드 장기투자가 정착되지 않아 2년 이상 투자해야 유리한 후취형 펀드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석영 신영자산운용 마케팅본부 팀장은 “주력 펀드를 운용사가 후취형으로 내놓고, 많은 판매사가 팔아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증권이 후취형 펀드를 내놓을 당시 인기 있는 펀드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증권뿐 아니라 다른 판매사 여러 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펀드인 경우 다른 판매사 눈치를 보느라 운용사가 후취형 펀드를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 침체로 운용업계가 생존의 기로에 놓인 만큼 살아남기 위해 운용사가 수수료 싼 펀드에 베팅할 가능성이 커졌다.



 자문형랩 시장은 펀드시장에 앞서 이미 한 차례 수수료 인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자문 계약을 연장할 때 대부분의 자문형랩 수익률이 저조해 수수료를 절반 수준으로 깎아줬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과거엔 자문형랩을 판매한 증권사가 2~3%를 수수료로 떼면 0.8%는 자문사에 주는 구조였다”며 “그러나 최근 자문형랩 수수료 자체가 낮아지면서 자문사에 돌아오는 수수료가 0.3%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수료 인하 압력은 국내 시장에 국한된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펀드 수익률이 저조해지면서 펀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개인 투자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금융 소비자 단체인 금융서비스사용자유럽연맹(European Federation of Financial Services Users)은 “유럽 펀드 판매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판매사가 판매 수수료 떼가는 데 있어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FT에 따르면 같은 벤치마크를 추종하는 거의 유사한 구조의 인덱스 펀드인데도 판매사에 따라 최대 6배의 판매 수수료 차이가 난다. 당장 떼가는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20년 장기투자 결과를 놓고 보니 똑같이 1만 파운드를 투자했을 때 수수료가 싼 펀드가 1만1000 파운드 이상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었다.



ETF(상장지수펀드) 특정 주가지수와 연동해 수익률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지수연동형 펀드(Index Fund)’.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거래된다. 보통 ‘운용사의 브랜드+추종하는 지수명+ETF’ 식으로 이름이 붙여진다. 이 가운데 레버리지ETF는 수익률 변동폭이 추종하는 지수의 일정 수준 이상이 되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인버스ETF는 추종하는 지수와 수익률이 반대로 나오도록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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