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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인과관계로 얽힌 거대한 덩어리 … 그게 화엄사상

중앙일보 2012.10.30 00:36 종합 24면 지면보기
고우 스님
15일 오후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고우(75) 스님의 ‘백일법문 강좌’ 9번째 강연이 열렸다. 전체 열 차례 강좌 중 마지막 고비라고 할 만했다. 불교경전을 연구하는 교학(敎學) 중 가장 어렵다는 천태종과 화엄종, 거기에 나타난 중도철학을 살폈다. 고우 스님은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하권 핵심 문장을 알기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고우 스님에게 듣는다 ‘성철 스님 백일법문’ ⑨

 먼저 천태종. 스님은 “천태종의 핵심은 세상의 존재 원리,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공(空)·가(假)·중(中) 삼제(三諦·세 가지 원리)로 설명하되 세 가지를 (다른 종파와 비교해)보다 원융(圓融·막힘 없이 통함)적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공’ 개념은 익숙하다. ‘나’라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무아(無我)다. ‘가’는 나라고 할 만한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으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에 따라 모든 사물이 일시적으로나마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이다. 결코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원리는 ‘중’에서 하나로 수렴된다. 유와 무를 떠난 중도(中道), 양 극단을 버리되 버림과 동시에 양 극단을 되살려내는 원융의 개념이다.



 화엄종은 천태종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불교 종파로는 명맥이 끊긴 상태다. 경남 합천의 해인사가 대표적인 화엄종 사찰인데 진작에 빼어난 선사(禪師)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선종 사찰이 됐다.



 스님은 “화엄종은 진리의 세계인 법계(法界)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고 했다. 만물이 천차만별이라고 보는 사법계(事法界), 반대로 만물의 평등함에 주목하는 이법계(理法界), 이법계의 이치와 사법계의 이치가 서로 걸림 없이 넘나드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마지막으로 이사무애의 원리를 현상계 전체로 확장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등이다.



 네 가지 법계는 서로 질적 차이가 있다. 스님은 “이법계와 사법계가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 단계라면 아사무애법계는 대학생, 사사무애법계는 대학교를 졸업한 격”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사무애법계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 불교의 진리를 드러내는 경지”라고 했다. 성철 스님의 유명한 발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법문 역시 사사무애의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일법문』은 화엄종의 중심 사상이 “고요한 바다에 일체 제법의 모습이 각인된 듯한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어가 화엄경의 근본 사상인 법계연기를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하권 95쪽). 만물이 고정된 실체 없이 거대한 한 덩어리를 이루되 그 안에서 연기의 법칙이 드러나는 거대한 바다, 그게 화엄세계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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