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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력증, 자포자기 말라 재활로 ‘한줄기 빛’ 찾아라

중앙일보 2012.10.29 03:01 건강한 당신 1면 지면보기
김안과병원 저시력상담실에서 독서확대기를 이용해 저시력 환자를 재활하는 모습. 국내 저시력 인구는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김수정 기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도 통하지 않는 눈 질환이 있다. 바로 ‘저시력(low vision)’이다. 책 표지 제목 정도 크기의 글씨를 1m 남짓 거리에서도 읽을 수 없다. 실명은 아니지만 안경·렌즈·시력교정술 등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시력이 개선되지 않는다. 원인은 다양한 눈 질환이다. 선천적으로 저시력인 경우도 있다. 11월 11일은 대한안과학회가 지정한 ‘눈의 날’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복병, 저시력에 대해 알아보자.

커버스토리 - 시력 개선 안 되는 시각장애



저시력 인구 40만 명 추산



전직공무원 김수한(가명·66·강원도)씨. 그는 퇴직 후 여유로운 삶을 꿈꿔 왔다. 여행을 다니고 독서와 서예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4년 전 퇴직 후 김씨의 삶은 기대와 정반대로 바뀌었다. 당뇨병으로 인한 혈관 문제로 망막이 손상되는 당뇨성망막병증으로 급격하게 저시력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여 가까이 있는 사람도 알아볼 수 없었다. 눈앞에 책을 바짝 갖다대도 읽기 힘들었다. 병원에서는 실명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저시력은 교정 후 시력이 0.05~0.3이거나 시야각이 20도로 매우 좁아진 상태다. 정상 시야각은 위아래로 각각 약 70도, 좌우로 100도다. 실명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각장애다. 전국저시력인연합회 미영순 회장은 “보이지도, 아예 안 보이지도 않는 상태”라며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야 사물을 인식하거나 시야의 중심부만 안 보이는 등 증상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저시력은 안경·렌즈·시력교정수술(라식·라섹) 등 어떤 방법으로도 개선되지 않는다. 더 이상의 교정·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안과학계가 추정하는 국내 저시력 환자 수는 약 40만 명. 저시력인연합회는 인구의 0.8~1.2%가 저시력일 것으로 추산한다. 중앙대병원 안과 문남주 교수는 “저시력은 치료가 아닌 재활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 맹인이라 여기고 자포자기해 재활의 기회를 놓친다”고 말했다.



모든 눈 질환이 저시력의 원인



저시력 환자는 일반시력표로 시력·시야를 측정하기 어려워 특수시력표를 사용한다. [김수정 기자]
저시력의 원인은 다양하다. 어린이 저시력 환자는 대개 선천적이다. 반면 성인 저시력은 후천적으로 나타난다. 눈 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않아 저시력으로 진행한다. 서울성모병원 안과 박신혜 교수는 “거의 모든 눈 질환이 저시력의 원인”이라며 “대표적인 것은 황반변성·당뇨성망막변증·녹내장”이라고 말했다.



황반변성은 노인 실명 원인 1위다. 노화 등의 원인으로 눈의 황반(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신경조직)에 변화가 나타난다. 초기에는 글씨나 직선이 일그러져 보이다가 나중에는 사물의 일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당뇨성망막변증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다. 망막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에 장애가 나타난다. 녹내장은 눈의 압력 상승으로 시신경이 눌려 발생한다.



한길안과병원 이경민 진료과장은 “서구식 식습관으로 당뇨병·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증가하며 저시력을 부르는 눈질환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 인구가 늘면 저시력 인구도 함께 증가한다. 눈이 노화하면서 각종 눈 질환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경민 과장은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65세 이상의 8~10%, 85세 이상은 25%가 저시력인 것으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저시력이어도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다리 절단 환자가 목발·보조기구를 사용해 걷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저시력의 재활에는 글씨나 물체를 확대하는 보조기구를 사용한다. 용도에 따라 근거리용·중간거리용·원거리용·전자기구 등으로 구분한다.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는 확대경을, 60㎝ 이상 떨어진 칠판이나 지하철 노선표를 봐야 할 때는 망원경을 사용한다. 글씨를 최대 60배로 확대해 화면에 보여 주는 전자 보조기구도 있다. 문남주 교수는 “저시력 보조기구는 물체를 크게 확대하므로 보이는 범위가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며 “기구를 불편 없이 사용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물을 보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도 재활의 하나다.



 박신혜 교수는 “국내에 10여 곳의 저시력 클리닉이 운영되고 있지만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 내원자는 극히 드물다”며 “적극적으로 재활을 받으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성모병원·중앙대병원·서울아산병원·강남성심병원·서울대병원·인천길병원·김안과병원 등에서 저시력 클리닉을 운영한다.



 저시력을 예방하려면 눈 질환의 조기치료가 중요하다. 이경민 과장은 “시력이 나빠지면 대부분 노화 탓이라고 방치하는데 저시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나이가 들수록 6개월에 한 번씩 눈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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