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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락 좀 보소 … 쭉정이 된 곡창지대

중앙일보 2012.10.29 01:25 종합 16면 지면보기
농민 최병석씨가 27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 자신의 논에서 쭉정이가 된 벼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27일 오후 2시 전남 해남군 북평면 들녘. 매년 추수 때면 황금빛으로 물들던 논들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벼 이삭과 잎이 하얗게 말라버린 논들을 멀리서 보면 갈대밭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벼 이삭이 팰 때 강한 바람과 침수 피해를 봐 낟알이 하얗게 변하고 나중에 쭉정이가 되는 이른바 ‘백수(白穗) 현상’ 때문이다. 올여름 이 지역에 잇따라 불어닥친 볼라벤과 덴빈 등 릴레이 태풍으로 인한 피해다.

[현장 르포] 32년 만의 흉작 전남을 가다
릴레이 태풍에 백수·흑수 겹피해
논 34% 해당 … 수확량 12% 줄 듯
재고량 많아 수급에는 지장 없어



 하얀 벼 이삭들 사이사이로 검은 점이 선명하게 찍힌 벼도 수두룩했다. 백수 현상과 반대로 벼들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흑수(黑穗) 피해를 함께 본 것이다. 최정수(62·해남군 북일면)씨는 “논 9920㎡(약 3100여 평)가 모두 백수·흑수 피해를 봐 수확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며 “1년 동안 ‘쭉정이 농사’를 짓는 바람에 올해는 쌀 한 톨도 못 건지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의 곡창 지대인 호남 지역이 볼라벤과 덴빈 등 릴레이 태풍의 영향으로 사상 최악의 흉작을 예고하고 있다. 태풍의 직접적인 피해를 본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낟알이 여물지 못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전남 해남과 진도·완도·함평·강진·보성·고흥·순천, 전북 군산과 정읍·고창·부안 등의 피해가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광주와 전남·북, 제주 지역의 쌀 예상 생산량은 138만t으로 지난해(154만t) 보다 10.2%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중 전남은 지난해 82만9040t에서 올해는 72만9498t으로 12%나 줄어 1980년(68만9000t)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릴레이 태풍으로 인해 단위 면적(10a)당 쌀 생산량도 423㎏으로 지난해(477㎏)보다 11.3%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농민단체에 따르면 올해 전남 지역 벼 경작지의 34%에 해당하는 5만9000㏊가량이 백수·흑수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은 “백수 피해를 본 논 가운데 1만㏊는 쌀 한 톨도 건질 것이 없고, 나머지 4만㏊ 이상도 수확률이 50%를 밑돈다”며 “아예 신고를 안 한 농가들까지 합치면 전체 쌀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태풍 피해에 따른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태풍 피해에 따른 손실금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입장이다. 앞서 9월 26일에는 함평 지역 농민 200여 명이 손불면 산남리의 논 1㏊의 벼를 갈아엎고 정부의 지원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최병석(55·해남군 북평면)씨는 “1만㎡가 넘는 논이 백수 피해를 봤는데도 위로금 형식의 지원금은 250만원에 불과했다”며 “지난해에는 40㎏들이 조곡 150여 가마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50가마 정도밖에 건지지 못해 또다시 빚만 잔뜩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흉작에도 불구하고 쌀값 파동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비축된 쌀 재고량이 84만t이 넘는 데다 1인당 쌀 소비량(71㎏)도 30여 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쌀 부족 현상은 우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남=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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