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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통일준비 해둬야

중앙일보 2012.10.29 00:30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내 생전에 동·서독의 통일은 이룩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꼭 2주 전에 어느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 몇 달 전 서울을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남북한 통일이 동·서독 통일보다 먼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은 곧 무너졌고 서독과 동독의 통일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가 곧장 통독으로 연결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바 있는 독일이 통일되어 더욱 강대해지는 것을 이웃인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구(舊)소련이 원했을 리가 없다. “우리는 독일을 사랑하기에 두 개의 독일은 더욱 좋다”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동·서독 통일에 대한 반농조의 코멘트는 당시 주변국들의 생각을 잘 말해준다고 하겠다. 또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공개석상에서도 독일의 통일을 반대해왔을 뿐 아니라, 통독 이후에 쓴 글에서 통독을 반대한 자신의 주장은 “확실한 실패였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주변 여건 속에서 통독에 앞장섰던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는 먼저 통독에 호의적이었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을 얻어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온갖 외교적 노력으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독의 자랑이었던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유럽 단일통화 도입을 약속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우리는 남북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준비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유사시 우리가 당장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은 남북한 간 인구비율이나 1인당 소득격차 등을 고려할 때 동·서독의 통일비용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 자명하다. 통독 당시 서독과 동독 간의 인구비율은 거의 4대1, 그리고 소득격차는 3대1 정도였다. 현재 남북한의 인구비율은 거의 2대1, 그리고 소득격차는 거의 20대1에 이른다. 따라서 통일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건전성 유지와 금융안정, 그리고 여유 있는 외환관리 등 우리 스스로가 사전에 해두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특히 독일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통화체제에 대한 장단기 구상, 급격한 북한주민의 이주에 대한 대비책, 장기투자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북한의 명확한 토지소유권 제도 확립, 북한 주요 국영기업의 존폐에 관한 기준, 그리고 임시 행정체제와 기초적 사회안전망 구축 등 제도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지난주에는 통독 당시의 서독 재무차관을 비롯한 독일의 전문가와 전 정책담당자, 그리고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통일과 한국경제’란 주제의 국제회의가 있었다. 동 회의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유사시 북한주민 이주문제에 각별한 대비가 있어야 함을 특별히 강조했다. 통독 당시 동독은 전 사회주의 진영에서 가장 높은 국민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약 1년 동안에만 동독 인구의 거의 4%에 해당하는 60여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지금까지 통틀어 170만 명, 즉 동독 인구의 10% 이상이 서독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빈곤 인구가 대부분인 북한의 현재 사정을 고려할 때 남한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북한주민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특별한 사전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북한 국영기업의 존폐 기준과 근로자 임금수준 설정 등도 이와 관련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의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와 함께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외교역량을 확충하고 평소에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기반을 구축해 두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독일의 경우와 달리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요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한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남북한 통일을 위한 대전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된 한국이 분단된 한반도보다 동북아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더욱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임을 설득해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에 적극 기여하고 참여함으로써 많은 호의(good will)를 평소에 쌓아두어야 한다. 유사시 이들 기구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단기적 통일충격 완화와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중장기적 노력을 함께 펼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여건과 북한 내부의 변화를 고려할 때, 통일에 대비한 이러한 사전준비는 무엇보다 시급한 국정과제다. 모든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의 몫임을 잊지 말자.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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