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홍구 칼럼] 박경리와 울리츠카야

중앙일보 2012.10.29 00:25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기나긴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서, 특히 지난 백여 년 제국주의와 전체주의가 자아낸 격랑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나라와 국민, 공동체와 문화의 존립 및 연속성을 지켜낸 것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힘, 더 나아가 여성의 힘이었다는 평범한 그러나 잊기 쉬운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엊그제 강원도 원주에서 러시아의 뛰어난 여류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게 박경리문학상을 수여하면서 한국이나 러시아나 어떤 영웅보다도 여성의 힘이 그 존립을 지탱한 주력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이 제국주의와 근대화의 물결에 부딪히며 뼈저리게 겪어온 파란만장한 수난사의 인간적 측면을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인 대하소설 『토지』로 묶어 우리에게 남겨준 박경리 선생의 공헌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국민작가인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문학상의 첫 외국인 수상자인 울리츠카야 여사가 자신과 박경리의 문학은 가족, 인간의 존엄, 명예, 충성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고민한 ‘유전적 유대관계’를 지녔다고 한 수상 소감은 인상적이었다. 문학상심사위원회가 심사평에서 지적했듯이 울리츠카야의 작품에서 창조된 여성들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모든 상처를 다 치유해주는 어머니와 대지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톨스토이를 비롯한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발전시킨 구원의 미학을 되살리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대지 모성에 젖줄을 댄 박경리문학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울리츠카야는 그가 받은 문학상들 가운데서 3년 전 헝가리에서 받았던 부다페스트상과 올해의 박경리상이 유난히 큰 뜻을 지닌 것 같다고 말한다. 부다페스트상의 경우엔 1956년 소련군의 무도한 헝가리 침공의 상처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며, 박경리상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양과 서양 사이에 쌓였던 문화의 장벽이 정말로 허물어지는 흥분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물학 전공으로 오랫동안 유전학연구소에서 근무하다 50고개를 넘으며 작가가 된 울리츠카야는 모든 생명에 대한 관심이, 특히 여러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성찰이 남다른 작가다. 생명을 가진 존재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는 지성과 의식을, 그리고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억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그 의미를 갖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은 창의력을 지녔기에 문화를 창조할 수 있고 문화의 보전과 발전은 삶의 의의와 직결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편 박경리와 울리츠카야는 똑같이 인간의 한계, 삶의 숙명적 어려움과 고달픔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다. 인간은 항상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만 언제나 해결할 수 없는 보편적 문제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인간의 삶이란 추상적인 보편적 원칙보다도 구체적인 각 개인의 경험으로 실존하는 것이며 어차피 고난과 고통은 모든 인생이 피해 갈 수 없는 것이기에 서로 간의 관용, 이해, 인내, 도움을 통하여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삶의 지혜는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특권층보다는 평범한 시민들, 작은 영웅들의 드러나지 않는 포용과 화합의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박경리와 울리츠카야의 문학은 보여주고 있다.

 10년에 걸친 힘든 작업으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금년에 출간된 『토지』의 결정판 20권을 대하면서 소회되는 박경리 선생의 모습은 고뇌와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때로는 종교적 상념을 기울이는 자세다. 2002년 판 『토지』 서문에서 선생이 생각하는 한 가락 구원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을 절감하면서도 평사리 사람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의 향기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 박경리 문학의 진수라 하겠다.

 오늘날의 문명은 조각으로 만든 이불과 같다고 울리츠카야는 비유한다. 수천 년에 걸친 다양한 민족문화는 한 겹 위에 또 한 겹을 덧입히는 축적과 보전의 과정이며 결과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땅과 공기에서 빨아들이고, 자신이 죽은 후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된다는 식물 생존과 보전의 원리에서 지구촌 시민사회의 규범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박경리와 울리츠카야가 그리는 여성상, 무조건 가족과 이웃을 보전하려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