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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파워리더 ⑨ 이병구 네패스 회장

중앙일보 2012.10.29 00:25 경제 6면 지면보기
이병구 네패스 회장이 충북 청원 오창 본사에서 자체 개발한 LED 조명기구 ‘UFO 조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원=프리랜서 김성태]


“인생 만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습니다. 사업이 쭉쭉 뻗어나간다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니고, 실패했다고 좌절할 일도 아닙니다. 기업 경영은 평정심을 갖고 꾸준히 가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고용은 기업 존재 이유 … 위기 때 구조조정 안 해



 조금 독특함이 느껴지는 경영론이었다. 이런 지론을 편 주인공은 창업 21년차 반도체 후공정업체 네패스 이병구(66) 회장. 왜 그런 경영철학을 가지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12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화학약품을 국산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한 지 10년 되던 2000년,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상장을 했다.



 상장으로 자금 여유가 생기자 신규 투자를 계획하게 됐다. 전자회사들을 보니 TV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뒤가 불룩한 브라운관 TV에서 얇은 LCD TV로 넘어가던 초기였다. LCD 패널에 들어가는 ‘냉음극 형광램프(CCFl)’란 부품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 거래 회사가 양산만 하면 전량 구매해주겠다고 나섰다. 당시 한 해 매출의 4분의 1이나 되는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정작 1년 후 양산에 성공했을 때 고객사는 “자회사를 만들어 공급받기로 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저 구두합의만 했던 터라 뭐라 항변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해요. 공장을 짓고 장비를 사고 직원도 뽑아놨는데 말이야.”



판로를 개척하려 백방으로 뛰었지만 일본 제품과의 품질 경쟁에서 번번이 밀렸다. 결국 장비를 모두 처분하고 사업을 접었다.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새옹지마 아닌가. 좋은 일(상장) 뒤에 나쁜 일이 있었으니 다시 좋은 일이 생길 차례다.”



 신성장 동력을 다시 찾았다.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후공정’에 주목했다. 후공정이란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고, 이를 기판 위에 새긴 뒤에 하는 일을 일컫는다. 당시 후공정은 대만 업체들이 꽉 잡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국내 업체가 있으면 한국 대기업들이 거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투자를 결심했다.



 앞선 실패는 그에게 ‘품질’을 각인시켰다. 반도체 후공정 기술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찾은 답은 싱가포르였다.



 “일단 싱가포르 정부가 후공정 육성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내국·외국 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요. 게다가 싱가포르에는 반도체 설계·생산 회사들이 많았습니다. 후공정 회사로서, 서로 논의하면서 기술을 발전시킬 상대가 많았던 거지요. ”



 네패스가 싱가포르에서 개발한 후공정 기술은 공정이 정교해 작고 가벼운 반도체를 만드는 데 유리했다.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용으로 적합하다. 그래서 요즘 들어 특히 네패스가 후공정한 반도체를 찾는 곳이 많다고 한다.



 이 회장만의 경영론이 하나 더 있다. ‘고용이야말로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도 구조조정 없이 버텼다.



 “문제는 있는데 아무도 풀지 못한 것, 그걸 풀려고 기업가는 기업을 세웁니다. 직원들은 거기서 돈을 벌고요. 기업은 꿈을 실현하는 공간인 겁니다. 제가 새옹지마라는 말을 좌우명 삼아 포기하지 않고 사업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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