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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교수가 본 한국시리즈] 통통 튀는 치어리더, 물결치는 막대풍선 … 야구는 축제

중앙일보 2012.10.29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28일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인천 문학구장을 찾은 이상묵 서울대 교수. [인천=김민규 기자]
역시 야구장을 오니 야구의 참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치열한 승부를 떠나 축제에 온 것 같다.



 2006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를 당한 뒤 야구장 방문은 처음이다. 그 전에는 고교야구를 자주 관람했다. 1년에 한 번은 고교 동창들과 동대문야구장에 모여 모교인 성남고를 응원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방문하는 걸 좋아한다. 보통 장애를 겪으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리게 된다. 하지만 나는 반대다. 다친 뒤 골프 등 취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답답했다. 학교 수업·특별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복잡한 생각은 오히려 군중 속에 있을 때 깨끗이 지워지곤 한다. 그러나 쌀쌀한 날씨 탓에 오늘 야구장 올 때 걱정이 많았다. 체온과 혈압 조절이 잘 안 돼서 야외에 오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였다. 오늘 날씨는 정말 최고였다. 예술의전당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는데 ‘야구장도 자주 와야겠구나’고 느꼈다.



 한국프로야구는 미국 야구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 같다. 지난 7월 미국 횡단 중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의 홈 구장 프로그레시브를 찾아 추신수 선수를 만난 적이 있다. 미국이 구장 시설은 국내보다 좋았다. 하지만 관중의 호응은 한국처럼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특히 한국은 치어리더의 응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렇게 뛸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서 치어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다음에 야구장을 방문하면 꼭 치어리더 앞에 앉아서 관전하고 싶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막대 풍선을 치고 어깨동무도 하고…. 나는 다 잃어봤기 때문에 돈보다 젊음과 건강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다. ‘TV에서 보는 야구랑 직접 구장에서 보는 것이랑 크게 다르구나’를 느꼈다. 특히 오랜만에 아버지 노릇을 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사고를 당한 뒤에는 한 번도 아이들과 야외에서 놀아준 적이 없다. 단순히 모범적인 아빠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돼 느낀 점이 많다.



 축제의 장, 야구장. 이곳 마운드 위에서 시구를 한번 해보고 싶다. 장애인으로서 꿈과 희망을 심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남성팬들이 싫어하실까봐 걱정된다. 보통 여자 연예인 시구를 많이 좋아하시니까.



 젊음의 열기와 열정을 야구장에서 마음껏 누리시길 바란다. 사람이 감사함을 느끼려면 아쉽고 귀해져야 하는데 그 전에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특히 장애를 겪고 계신 분들도 밖에서 레크리에이션 및 사회 활동을 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맛보셨으면 좋겠다.



이상묵 서울대·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린다. 2006년 7월 미국에서 지질 야외조사 중 차량 전복 사고로 어깨 위쪽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전신 마비가 됐다. 하지만 사고 6개월 만에 강단에 다시 서는 의지를 보였다. 국내 스포츠 최대 축제인 한국시리즈를 직접 관전한 이 교수는 경기 종료 뒤 기자와 30여 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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