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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 대사 리더십 인터뷰 ⑩ <끝> 비쉬누 프라카쉬 인도 대사

중앙일보 2012.10.29 00:11
왼쪽부터 최호은군, 프라카쉬 대사, 정수민양.



“필요할 때는 NO라고 말하는 용기 필요합니다”

“환경이 자신을 위해 변화하기를 바라지 말고 자신 먼저 변하세요. 그럼 주변 환경이 다르게 보일 테니까요.”



 비쉬누 프라카쉬(56) 주한 인도 대사는 23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주한 인도 대사관을 찾은 최호은(용인외고 2)군과 정수민(한영외고 1)양에게 열린 태도를 갖기 위해 스스로를 성찰하라고 조언했다.

 

최호은(이하 최)=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현지의 역사, 사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요. 낯선 환경에서도 많이 알수록 편안함을 느끼니까요. 어제 약 50여 명의 인도 학자와 학생이 있는 포항 포스텍을 방문해서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단 한 사람만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전 그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한국인이 인도에 와서 인도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도어를 사용한다고 불평하면 어떻게 반응하실 것입니까’하고요. 다른 나라가 나혼자만을 위해 변하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어야 하지요.”



정수민(이하 정)=하지만 문화적 차이가 정체성을 혼란을 줄 때는 어떻게 하나요.



 “유연한 자세를 갖되 필요할 때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관습에 따라 소고기와 보드카로 구성된 만찬이 새벽 4시 30분에 나왔어요. 전 보드카를 좋아하지만 이른 새벽의 보드카는 그렇게 반갑지 않았지요. 힌두 관습에 따라 소고기는 더욱이 먹지 못하고요. 저는 매우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열린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타협하는 수준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본인이 이룬 외교적 성과를 소개해 주세요.



 “뉴욕에서 경제상무 업무를 담당하던 저는 199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첫 번째인도 총영사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개발되지 않아 경제 상황도 나빴고 치안도 불안정 했어요. 하지만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생활은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우리는 1년 만에 러시아와의 직접 무역량을 12만 달러로 증진시켰습니다. 전 인도의 회사들에게 러시아로의 사업확장을 권했고, 그 해 연말까지 6개의 인도 회사가 러시아에 진출했습니다.”



정=외교관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외교관은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잘 표현하는것 만큼이나 잘 들어야 하지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의사소통에 매우 능한 사람입니다. 그를 만났을 때 저와 일대일로 대면한 시간은 고작 10초, 20초뿐 이었지만 그가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외교관은 유머감각도 갖추어야 합니다.(웃음) 협상에서 유머는 상대방 마음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정=어린 시절 어떤 경험이 지금의 대사님을 이끌었나요.



 “공무원인 아버지로 인해 인도의 여러 지방을 이사 다녔어요. 인도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표준어만 18개이고, 방언은 2300개가 넘어요. 따라서 어릴 적부터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에 익숙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다양한 환경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호기심이 습관이 됐어요. 지적 호기심은 외교관에게 매우 필요한 자질이에요.”

 

최=그럼 자녀에게는 어떤 아버지이신가요.



 “전 딸과 아들에게 매우 엄격한 아버지였어요. 항상 지적하고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당시 16살이던 아들이 제게 물었어요. ‘제가 실수를 한 적이 있나요? 살면서 실수를 해도 되나요?’하고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자녀를 위한다는 이유로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인생을 제가 정해주려고 했다는 것을요. 그 날 이후 저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여유를 갖고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도왔지요.”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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