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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성검사 잘 보려 학원까지 … 구직자 37% 취업 사교육

중앙일보 2012.10.26 03:00 종합 6면 지면보기
연세대 4학년 김선희(24·가명)씨는 “기업 채용 면접을 보게 되면 얘기할 거리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학과 대표, 총학생회 사무장, 보육시설·요양원 봉사활동 같은 경력이 많기 때문”이라며 “호프집 운영까지 해 봐서 요즘 기업 입사에 중요하다는 ‘개인이력 스토리텔링’에 자신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올 상·하반기 기업 40곳에서 모두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게다가 그중 절반은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김씨는 “스펙(점수화할 수 있는 조건) 때문인 것 같다”며 “학점 3.7(만점 4.5)점에 토익 770점으로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고 했다. 그는 지금 영어는 물론 자기소개서 강사까지 찾고 있는 중이다.


일자리 만들기 나누기 (1) 스펙 공화국에 멍 든다
주요 기업 신입사원들 ‘평균’ 보면
학점 3.7, 토익 852점, 자격증 1.8개

 학점 3.7, 토익 852점, 자격증 1.8개.



 대기업 10곳 신입사원의 평균 스펙이다. 취업포털인 잡코리아가 1008명을 분석한 결과다. 최근 대기업들이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하지만, 합격자의 스펙은 여전히 높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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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기업들이 스펙을 보는 경향은 뚜렷하다. 무엇보다 지원자가 많아서다. 한 그룹의 채용담당 부장은 “1998년께 인터넷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서류접수가 3~5배 늘었다. 점수로 걸러 사람을 줄이지 않으면 채용에 들어가는 시간·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스펙을 보지 않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이 그룹의 올 하반기 공채 경쟁률은 80대 1에 달했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서류에서 스펙 쓰는 항목 자체를 없애버린 곳도 있지만, 자기소개서에 점수를 써넣는 것까지 막을 순 없지 않겠나”라며 “스펙으로 거르지 않기란 국내 대기업 사정에 비춰봤을 때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자 스펙이 높아지면 ‘대기업 입시’ 시장도 따라 커진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 구직자 500명 중 36.8%가 “영어·자격증·면접과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해 학원·컨설팅 같은 취업 사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들은 한 달에 27만원씩 쓰고 있었다. 2009년엔 30%였다. 또 83.2%가 “사교육의 효과가 크다”고 해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에 따라 최근 대기업 입시학원엔 학점·토익·경력 같은 스펙을 한꺼번에 관리해주는 ‘취업 컨설팅’은 물론 인성면접에 대비하는 강의도 나왔다. 집중면접·토론까지 훈련시킨다.



 창의성·잠재력을 보기 위해 기업별로 개발하는 ‘인·적성 검사’에도 족집게 강사가 등장했다. ‘모 기업에서 6년 동안 채용을 담당한 강사가 이틀 동안 인·적성 검사 집중 강의를 해준다’는 식이다.



 서울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는 김은진(24)씨는 “인·적성 검사 동영상 강의는 기업별로 15만원이 든다. 10개 기업에 응시하면 150만원”이라며 “4~5명이 스터디 그룹을 짜서 돈을 나눠 내고 공부하는데, 학교 스터디룸에 가면 함께 동영상을 보는 풍경이 흔하다”고 했다. 김씨는 상반기 절반 이상의 기업 인·적성 검사에서 떨어졌지만, 강의를 듣고 난 하반기엔 거의 모든 기업에서 이 검사를 통과했다.



 ‘취업 과외’ 시장은 뽑는 기준이 모호해서 더 과열된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은 서류·면접 같은 전형별로 지원자 숫자를 추리는 규모, 합격자의 점수, 합격·탈락 이유 같은 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성균관대 심리학·국제통상학과를 졸업한 이지연(24)씨는 “기업 채용은 떨어져도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함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학점 3.67점이고 토익은 945점, 토익스피킹 7급이다. 또 회의 진행을 돕는 자격증, 영국 세계잼버리 자원봉사 경력, 대학 미식축구부 매니저 이력도 있다. 호주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하지만 20~30여 곳에 응시했다가 모두 떨어졌다. 이씨는 “기업 채용설명회에 가봐도 ‘창의성’ ‘성실함’ 같은 당연한 단어만 나온다”며 “결국엔 점수로 보이는 스펙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지영·장정훈·김호정·채승기·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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