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자바오가 남북정상회담 주선 … MB, 흔쾌히 평양 가겠다 했지만 …

중앙일보 2012.10.26 03:00 종합 10면 지면보기
정상회담을 ‘한몫 챙기는 수단’으로 여기는 북한의 행태가 2009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드러났다. 북한이 정상회담의 대가를 요구한 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2000년 6·15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사전 접촉 과정에서 거액을 요구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초기 대북 송금 특검에서 김대중 정부가 현대그룹을 통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현물 5000만 달러를 포함해 모두 5억 달러를 북한에 건넸던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 비밀접촉 막전막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7년 10·4 정상회담의 경우 대가성 금품 지원은 드러난 바 없다. 다만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10·4 선언을 보면 경제협력을 명분으로 엄청난 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2009년 당시의 비밀접촉의 진상도 상당 부분 드러났다. 싱가포르 접촉은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6월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횟수는 말할 수 없지만 여러 번 만났다”고 처음 시인하면서 확인했다. 그러나 그 이후 이뤄진 남북 접촉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시 실무접촉을 담당했던 한 당국자는 대북 지원방식에 대해 “과거 동·서독 사이에 이뤄졌던 ‘프라이카우프(freikauf)’ 방식을 채택할까 고려했으나 북한에 돈을 퍼준다는 데 대한 거부반응이 나와 거둬들였다”고 말했다. 프라이카우프란 ‘자유를 산다’는 뜻으로 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현금과 물품을 제공하고 정치범을 데려오던 사업을 뜻한다.



 북한 측의 현금 요구에 우리 측 정부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실무협상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돼 결국 정상회담 무산으로 이어졌다. 그 뒤 우리 정부는 회담을 처음 중재한 이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였다는 점을 감안해 회담이 무산된 경위를 중국 측에 설명해줬다고 한다.



 이 같은 경위를 근거로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이명박 정부가 처음부터 남북대화를 기피했다는 지적을 반박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시종일관 정상회담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전제조건의 하나로 내세운 평양 방문을 이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5월 9일엔 당시 김태효 대통령 대외전략비서관, 김천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홍창화 국가정보원 국장이 베이징에서 북한 당국자와 접촉했다. 이는 약 두 달 뒤인 6월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로 공개됐다. 당시 북한은 우리 당국자가 북한 대표에게 돈봉투를 건네려 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