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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운영 40대, 밤에 대리운전하며…'처참'

중앙일보 2012.10.26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24일 서울 미소금융 은평지점에서 한 여성이 강상구 사무국장(왼쪽)과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24일 서울 녹번동 미소금융 은평지점, 한 70대 할머니가 창구에 앉았다. 신세 한탄 같은 상담이 시작됐다. “영감이랑 폐지를 주워. 한 달에 90만원 쥘까. 아들 사업이 망해서 그 빚을 달마다 29만원씩 갚아. 밤 12시가 넘게 폐지를 주워도 살기가 빡빡해서….” 할머니는 “나 같은 사람도 대출이 되느냐”고 물었다. 강상구 사무국장은 “무등록 자영업자로 보면 100만~200만원은 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서류 안내를 받고 돌아갔다. 이 지점을 찾는 상담자는 하루 5~10명. 재래시장 철물점 주인, 식당 주인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지점 연체율은 최근 10% 수준으로 올라갔다. 열 명 중 한 명은 빚을 못 갚고 있단 얘기다. 강 국장은 “이 할머니처럼 대개 소득 증명 자료도 없는 분들이 돈을 빌리러 오니 상담을 통해 소득이 얼마인지 갚을 의지는 있는지 가늠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 수준으로 낮은 연체율을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라고 말했다.


그놈의 돈…빌리기는 힘들고 빌린다 해도 못 갚고 빌려줄 돈은 떨어지고
[J Report] 미소금융·햇살론 연체자 급증 … 서민금융이 흔들린다
햇살론 연체율 1년 새 4배로
미소금융 지역지점 6.3% → 8.9%

 #25일 서울 시내 한 신협 대부계의 전모(39) 차장. 오늘도 하루 종일 전화통에 매달렸다. 햇살론 연체자가 늘면서 매일 다섯 통 이상 “왜 이자를 못 갚으시냐” “무슨 사정이 생기셨느냐”며 독촉 전화를 돌리고 있다. 최근엔 전 차장 자신도 독촉 전화에 시달린다. “왜 한 달이 지났는데도 대출이 안 나오느냐”고 재촉하는 자영업 대출 신청자들이다. 전 차장은 “자영업 대출을 심사해 보증서를 써주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의 심사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며 “햇살론은 금액은 작은데 연체율도 높고 심사도 어려워 직원들이 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서민금융이 위태롭다. 일부 서민금융 상품은 6개월마다 두 배 수준으로 연체율이 뛰고 있다. 가파른 상승 속도에 현장에서도 “버틸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인력이나 지원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온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7월 기준 미소금융 전체 연체율은 4.7%. 하지만 은행·기업재단을 제외한 미소금융중앙재단 산하 20여 개 지역지점의 연체율은 이 수치의 두 배에 가까운 8.9%다. 지난 연말보다 3.3%포인트 급등했다. 햇살론도 마찬가지. 3개월 이상 연체돼 보증재원으로 메운 비중이 6월 말 기준 8.4%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시점(1.7%)과 비교하면 1년 사이 연체율이 네 배로 뛴 것이다. 일각에선 “3분기 기준으론 이미 햇살론 평균 연체율이 10%를 넘나들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서민금융 연체율은 양날의 칼이다. 정상적으론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에게 나가는 게 서민금융이다. 갚을 사람만 따져 빌려주는 은행보다 연체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체율이 끝없이 치솟으면 보증 재원이 줄어든다. 빌려줄 돈이 바닥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서민금융 창구는 예민해져 있었다. 한 미소금융 지역지점 담당자는 “담보도 없고 신용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대출인데, 어떻게 연체율을 은행 수준으로 관리하겠느냐”며 “은행·기업의 미소금융재단은 차량담보대출을 하니 그나마 연체율이 낮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창구 담당자는 “소득을 증명할 자료도 없는 사람을 놓고 빚을 갚을 것이냐 아니냐는 걸 판단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다”며 “점을 칠 수도 없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조인희 미소금융중앙재단 사무처장은 “지역지점 상담자들은 금융권 은퇴자들이 사실상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라며 “연체율이 오르는 등 실적이 좋지 않으면 지점 운영비도 깎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들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연체율 상승도 창구 탓만은 아니라고 서민금융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경기가 나빠져 빚을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서민이 실제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소개로 접촉한 두 명의 연체자는 모두 부업을 뛰고 있었다.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중국집을 하는 홍모(49)씨는 “장사가 안돼 야채 살 돈이 없다. 가게 문 닫고 밤 9시30분부터 새벽 1시까지 대리운전을 해서 그 돈으로 배추를 산다”고 했다. 서울 봉천7동 재래시장에서 치킨집을 하는 김모(53)씨는 “우후죽순 치킨집이 생기는 바람에 수입으로 재료비나 임대료를 다 댈 수 없다”며 “건설 현장에 일거리가 있으면 나가서 가게 적자를 메운다”고 말했다.



 “서민금융이 지속 가능한 모델이냐”는 회의적 시각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늘어서 소득이 생겨야 서민들 숨통이 틔는 것인데, 서민금융에서 돈을 빌려다 급한 불 끈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며 “담보도 없고 추심도 할 수 없는 서민금융은 연체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변호사)도 “어차피 빚을 갚을 수 없는 계층은 복지 정책으로 도와야지 금융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은 대출을 안 해줘야 하는데, 당국은 계속 대출을 유도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은 연체율이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긴 하지만 지나친 우려를 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해선 금융위원회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경제 사정 때문에 서민금융 연체율 상승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은 맞지만 최대 20% 수준의 연체율을 감안해 설계된 상품인 만큼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지점마다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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