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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 바통 터치 … “삼형제 우애로 빚어 막걸리 맛 남달라요”

중앙일보 2012.10.23 04:04 1면
가업을 잇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막걸리 사업에 뛰어든 형제들이 있다. 음봉막걸리 대표 안준영(34), 도영(32), 우영(29) 형제가 그 주인공. 이들은 자신들의 사업장 ‘아산 음봉 양조장’에서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음봉 양조장’ 안연홍씨 가족

“가족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힘들 땐 서로 의지하니 행복하다”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 가족의 꿈은 바로 음봉 막걸리가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이다.



안연홍(오른쪽 둘째)씨 가족들이 음봉 양조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장남 준영, 둘째 도영, 막내 우영씨와 안씨의 부인 강미자씨.[사진=조영회 기자]


삼형제가 제조부터 영업·배달까지 척척



18일 오전 10시30분 아산 음봉 양조장. 아침부터 다섯 식구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큰 아들 준영씨는 지하 발효실에서 수시로 술들의 온도를 측정한다. 둘째 도영씨는 어머니를 도와 ‘음봉 막걸리’ 라벨이 붙어있는 통에 완성된 막걸리를 붓고 포장한다. 막내 우영씨는 아산 인주면에 배달할 막걸리 100여 박스를 차곡차곡 탑차에 싣는다. 아버지 안연홍(63)씨는 거동이 불편한데도 30분 간격으로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에게 막걸리를 건네주느라 여념이 없다. 바쁜 와중에도 이들 다섯 식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함께 일하면서 ‘이게 정말 행복이다’ 느껴요. 그래서인지 다들 웃으면서 일하죠.”



큰 아들 준영씨의 얘기다. 이들은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자신들이 직접 거래처까지 배달한다. 아산에서는 인지도가 꽤 높기 때문에 주문이 많은 날에는 삼형제가 한꺼번에 배달을 나가 오후 늦게까지 못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중간업자를 두지 않는다. 거래처에서 소비자들을 만나고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일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젊으니까 배달일쯤이야 거뜬하죠. 현장에서 저희를 알아보고 음봉막걸리를 칭찬해주실 때는 오히려 힘이 납니다.”



 막내 우영씨는 배달 일을 직접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배달 일을 직접 하면서 영업과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발로 뛰는 시간이 많은 만큼 매출도 눈에 띄게 올랐다고 한다.



“저희 형제들이 사람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영업에도 큰 도움이 됐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산 대표 막걸리 하면 저희 ‘음봉 막걸리’만 떠오르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큰아들 준영씨의 포부답게 음봉 막걸리 매출은 순항 중이다.



하루 세 시간 자며 일한 아버지·어머니



지금의 음봉 막걸리가 시중에 처음 나온 시기는 1989년. 아버지 안씨가 음봉 양조장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원래 온양에서 과수원을 운영해왔던 안씨. 그는 농약중독증 때문에 전업을 생각했고 우연한 기회에 양조장이 시가보다 좀 더 싸게 매물로 나와 인수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는 막걸리 사업이 하향세였어요. 전통주지만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막걸리를 기피했죠. 하지만 ‘정성’들여 만들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음봉 양조장을 인수한 안씨는 막걸리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유명 막걸리 양조장을 방문했다. 돈을 받지 않고 6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그 뒤 안씨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막걸리 기술자를 고용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안씨의 생각대로 막걸리에 정성을 들이니 단골도 하나 둘 생겨났다.



“개업 1년 남짓 동안 인기가 많았죠. 하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과 마찰로 위기가 찾아왔어요. 저는 막걸리 한 병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 직원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직원이 나가고 안씨는 부인 강미자(58)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인 강씨는 마다하지 않고 남편을 도와 매일 막걸리 생산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당시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없었다. 지하 발효실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3시간에 한 번씩 술의 온도를 측정해 선풍기를 틀거나 보일러를 가동하기도 했다.



“하루에 잠을 세 시간 정도만 자고 일했어요. 막걸리에 대한 지식도 없던 상태여서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죠. 더구나 아들들 도시락도 싸줘야 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으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어요. ‘남편이 그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했구나’라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죠.”



강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도와 ‘아산 대표 막걸리’ 만들 것



이들 부부는 이렇게 손발을 맞춰나갔다. 힘들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자식들이 잘 자라주는 모습에 힘을 얻었다. 음봉 막걸리의 인지도도 높아져갔다. 최근 한류 붐을 타고 막걸리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매출도 수직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이들 가족에게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안씨가 과로로 인해 쓰러진 것이다. 119 구조대에 의해 병원에 실려갔던 안씨의 병명은 ‘뇌경색’.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에 미리 돌봤어야 했는데 안타까웠어요.”



안씨의 병은 삼형제가 뭉치는 계기가 됐다. 준영씨와 도영씨는 대기업을 관두고 양조장 일에 뛰어들었고 취업준비를 하던 우영씨도 취업준비를 접고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미련은 없었어요. 언제나 저희 형제는 가업을 이어 함께 일하자고 항상 얘기해왔거든요. 그 시기가 조금 빨라진 것뿐이죠. 또 막내가 틈틈이 아버지 일을 많이 거들어봐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회사에 대한 미련이 없었냐는 질문에 첫째 준영씨가 한 얘기다. 이들 형제는 처음 시작 당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때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안씨가 비법을 알려주며 힘을 줬다. 잠시 떨어진 막걸리 인지도를 올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맛있어지고 깔끔해졌다”는 평가도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실에 누워 알려주신 비법은 정성과 집중이었어요. 상투적인 말씀 같지만 최고의 해답이었죠.”



이들 삼형제는 또 사회에서 쌓은 자신들의 장점을 적극 활용했다. 보험회사에 다녔던 준영씨는 영업과 마케팅에 강점이 있었다. 도영씨는 기계 설비 분야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 발효실을 손수 리모델링했다.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우영씨는 양조장의 내부 살림을 도맡아 했다. 이런 경영방식 덕분에 이들이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은 지 2년 만에 매출이 증가하고 인지도도 더 좋아졌다. 안씨 역시 몸이 많이 회복돼 양조장을 총괄 관리 감독하고 있어 음봉 양조장의 발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들들이 기특하고 고맙죠. 앞으로 욕심부리지 않고 잘 운영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병으로 인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안씨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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