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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전 아버지는 간첩이었습니다 무덤에서야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중앙일보 2012.10.23 00:59 종합 16면 지면보기
“공부는 잘 하고 있니? 아버지는 곧 나갈 테니 걱정 마라.”


누명 벗긴 아들 심한운씨
이중간첩 몰려 억울한 죽음
재판부 “명예 회복 됐으면”

 심한운(63·사진)씨는 아버지(심문규·사망 당시 36세)의 마지막 모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1959년 당시 여덟 살이었던 심씨가 외숙모의 손을 잡고 군 형무소 면회소에서 아버지를 만나던 순간이다. 곧 돌아오겠다던 아버지는 그러나 2년 뒤인 61년 5월 대구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반세기 가까이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아버지는 2006년 군 당국이 보내온 사형선고 판결문과 함께 아들을 찾아왔다. 아버지에겐 ‘위장자수자’ ‘북한의 이중간첩’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였고 아들은 이때부터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2009년 “군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해 심문규씨를 위장간첩으로 몰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심씨는 아버지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2일 ‘이중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이 집행된 심문규씨에게 50여 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고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이원범 부장판사는 이날 “심문규씨가 떳떳한 대한민국의 일원이었다고 선고함으로써 심씨와 유족의 명예가 일부라도 회복되기를 빈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문 낭독과 별도로 “체계가 성숙하기 전의 일이더라도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재심을 심리한 재판부가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사위 조사에 따르면 강원도 철원 출신인 심문규씨는 한국전쟁 때 국군 첩보부대에서 활약했다. 제대 후 심씨는 55년 육군첩보부대(HID)로부터 북파공작원 제의를 받았다.



 남편이 HID에 채용된 사실을 알게 된 만삭의 아내는 낙태를 하려다 숨졌다. 심씨는 처남의 집에 어린 삼남매를 맡긴 뒤 북한으로 떠났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는 6명의 부대원과 함께 북한군에 붙잡혔다. 전향을 거부하던 심씨는 다른 북파공작원으로부터 “HID가 7살 난 아들 한운씨를 북파시키기 위해 교육 중”이라는 말을 듣고 이중간첩 제의를 수락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남한으로 돌아온 그는 삼남매의 생존 사실을 확인한 뒤 바로 자수했다. 그러나 ‘이중간첩’의 누명이 씌워졌다. 첩보부대에서 563일 동안 불법 구금 상태로 신문을 받은 심씨는 위장자수 혐의(국방경비법 위반)로 중앙고등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까지 됐다.



 심씨는 22일 본지 기자와 만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아버지에게 아들로서 할 도리를 다했을 뿐”이라며 “50년 만에 이런 날이 온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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