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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원가보다 싼 전기료, 현실화해야 대정전 막는다

중앙일보 2012.10.23 00:57 경제 7면 지면보기
일본 석유화학 업체 J사는 최근 2억2000만 달러를 들여 한국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올 들어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는 9월까지 33억 달러로 전년보다 131% 급증했다. 다양한 혜택을 노린 것인데 그중 ‘전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일본 업체가 한국에 투자하는 이유는 싼 전기료에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국내 공장과 농가·가정이 기름에서 전기로 바꾼 것(전기화)도 모자라 외국 기업까지 군침을 흘리는 게 한국 전기료다.


겨울철 ‘블랙아웃’ 비상 (하)
원가 수준으로 가격 올려야
저소득층엔 에너지 바우처 지급

 전기 공급이 많아서 싼 게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 하나 짓는데 10년이 걸린다. 송전선 하나 깔려면 주민 반대로 홍역을 치른다. 발전소는 쉽게 늘지 않는데 요금은 저렴하니 소비가 급증하고, 전기 부족에 허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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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민의 인내(忍耐)를 요구한다. “내년을 잘 넘기면 신규 발전소 완공으로 전력 공급에 숨통이 트인다”며 가격 손질에 소극적이다. 실제로 신고리 4호기 원전과 영흥 6호기 화력 등 대형 발전소가 준공되는 2014년엔 1000만㎾가 새로 공급된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아주 급하지 않은 사용처부터 절전을 유도하는 등 적절하게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력 수요는 해마다 500만kW 넘게 증가한다. 공급이 걸음마라면 수요는 날아가는 수준이다. 이종수 서울대(기술경영경제정책 대학원) 교수는 “지금 2~3년을 잘 넘긴다 해도 추후 10년 뒤 수요 증가는 어떻게 대처할 셈이냐”며 근본 해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낮은 전기료 ▶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 불안감 증가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을 고루 따져 국가 에너지 전략을 재편해야 급속한 ‘전기화(化)’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정부는 연말까지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3~2027년)을 내놓고, 내년 초엔 2차 에너지 기본계획(향후 20년간 적용) 등 굵직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한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위기감으로 확산한 ‘전력 및 에너지 대계’를 손질할 절호의 기회다.



 김창섭 가천대(에너지IT학과) 교수는 “적정한 ‘화석 연료’ 이용으로 안정적인 전력 수급 구조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등유 난방 인구를 특정한 비율로 늘려 전기 수요를 감축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화석연료를 태워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높아 이산화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2008년 마련된 1차 에너지 기본계획(2008~2030년)은 ‘원자력·신재생(태양광·풍력 등)’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원전 증설은 안전 문제로, 신재생 발전은 비용 때문에 전력 수급의 해법이 되기 쉽지 않으니 ‘틈새 전략’을 찾으라는 주문이다.



 산업용을 중심으로 한 전기료 현실화의 경우 정부는 지금껏 ‘물가 부담’을 걱정했다. 김창섭 교수는 “전기료 인상 대신 유류세 인하를 통해 기름값을 내리면 물가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을 수 있다”며 “정부는 세금 수입 감소를 걱정하지만, 전기료 인상분을 총체적인 ‘에너지세 증가’로 보면 결국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전기요금을 얼마나 올리느냐다. 현재 전력의 판매가격은 생산비의 90% 수준이다. 전문가는 ▶이를 100% 이상으로 올리되 ▶대신 산업계 경쟁력 유지를 위해 경쟁국보다 낮게 책정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또 가정용 전기료 인상에 대해 이종수 교수는 “저소득층 부담은 에너지 바우처(구입 쿠폰) 지급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반발이 무서워 전기료 왜곡을 방치하면 정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현재 정부의 수요 관리는 요금 체계와 상관없이 산업체 관리 등에 집중돼 있다”며 “중장기 계획을 내놓기 전에 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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